자민당 실력자로 일본 정치를 막후해서 끌어왔던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가 19일 새벽 입원중인 도쿄도내 병원에서 76세로 사망했다.

다케시타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변형성 척추증 수술을 받은 뒤
공적인 활동을 완전 중단한 채 치료에만 전념해왔으나 이날 새벽 호흡
곤란 증세로 숨을 거뒀다. 다케시타 전 총리는 지난달 수술 후유증에다
아끼던 제자인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쓰러진데 따른 충격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 비서를 맡아왔던 동생에게 지역구를 물려줬다.

1924년 양조장집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고향인 시마네 현에서 중학교 영어 교사를 지내다 51년 현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58년 중의원에 당선됐다. 그후 연속 14선을
기록하면서 관방장관과 건설부장관, 재정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그는 87년 7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결별하고
「게세카이」를 결성, 다케시타파를 출범한 뒤 그해 11월 총리에
취임했다.

재임기간중 논란이 많던 소비세를 도입하고 지역 발전에 힘을
기울이는 등 업적도 남겼지만 리크루트사 헌금 의혹 사건으로
89년6월에 「불명예 퇴진」했다. 그러나 그뒤로도 우노 소스케,
가이후 도시키, 미야자와 기이치 등 후임 내각 탄생에 영향력을 행사,
막후에서 대부역할을 해왔다. 자민당 주류의 맥을 이은 오부치파의
사실상 오너이기도 해서, 하시모토 류타로나 오부치 전총리 선출에도
사실상 그의 힘이 깊숙히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폭력단 연계 의혹」 등으로 일본
정치의 부정적인 면을 상징하는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일 교류에도 나름대로 많은 일을 해왔다. 한일의원연맹의
일본측 회장을 줄곧 맡아왔으며, 박태준 전 총리 등 와세다대
동문을 중심으로 한국내에 깊은 인맥을 갖고 있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고 다케시다 전 총리에 대한 여러가지 평이 있지만
한일관계에서 만큼은 그가 많은 기여를 한게 사실』이라며
『오부치에 이어 다케시다 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한일 정계의
끈은 거의 끊어진 셈』이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