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로부터
14일 하루는 정보통신담당 기자들에게는 취재거리가 넘쳐 정신을
못 차린 하루였습니다.
빌 게이츠, 존 체임버스, 리처드 스톨먼 등 정보통신업계의 스타들이
속속 한국을 찾았고 강연회 전시회 등 각종 행사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렸습니다.
세계 디지털 경제를 이끌고 이들 스타들을 직접 만나, 경험과 비전을
듣는 것을 정보통신업계 종사자들에게 큰 행운입니다.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고, 회사의 비전을 사회에 비전에 녹여
설명하는데 능수능란합니다.
한편의 잘 준비된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강연회도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컴덱스 기조연설 등 중요행사에서 미리
제작한 비디오물을 보여주거나, 실무자들과 함께 제품을 시연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곤 합니다.
IT스타들을 취재하면서 "말을 어떻게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서 영어권 스타들의 말솜씨는
교육과정과 문화에서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실리콘밸리 한국인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이종문 암벡스 회장의 언어관에서 찾았습니다. 한국을 방문중인 이
회장은 "한국에는 이 시점을 표현할 수 있는 연설자가 없다"면서 그
이유로 언어문제를 들었습니다.
언어의 기본은 정신-문화-정체성 등인데, 오늘날 디지털
경제에서는 다시 '기술'이자 '경제'라는 성격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어 한 국가의 고유언어는 문화와 정체성을 자국민을 상대로
대변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대상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영어가 국경을 넘어선 의사소통의 도구이며 동시에 '기술'이자
'경제'인데, 영어에 자유롭지 못한 토양에서 어떻게 현 시점의
기술과 경제문제를 간파한 명연설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볼 관점인 듯합니다.
이위재 기자의 체임버스 회장 강연회 현장 스케치를 보내드립니다.
/우병현 드림 penman@chosun.com
■ 체임버스 신드롬을 취재하면서
"아니, 아침부터 웬 난리지."
14일 아침 7시 무렵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근방을 지나는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부분 고급 승용차 일색이라 "뭔가 거물이 오는 모양이군"하며
지나치는 것 같았습니다.
이 곳에선 시가총액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 시스코 시스템즈의
존 체임버스 회장 강연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차량행렬은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 세계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시스코
'시스코 회장'이란 이름이 주는 위력을 실감하지 못했던 호텔
직원들도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스코는 14일
현재 4280억달러로 1위 자리를 제너럴 일렉트릭(4934억달러)에
내준 상태이지만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3519억달러)를 앞섭니다.
조찬강연회라는 명목으로 300석을 마련했지만 행사요원 등 주변
인원까지 합하면 체임버스 회장은 400여명 가까운 인원과 아침을
함께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과 달리 체임버스
회장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지 않을까 하던 제 판단이 잠시 빗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 최선을 다한 '미스터 인터넷'의 연설
체임버스 회장은 '미스터 인터넷'이란 애칭에 걸맞게 능숙한 태도로
강연을 전개했습니다. "남부 사투리가 심하니 이해해달라"는 유머로
연설의 막을 열어, "(당신은 인터넷 혁명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느냐?"(Are you ready?)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가끔
연단에서 내려와 청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공감대를 끌어내려는
노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강연 내용은 새로운 게 없었습니다. 체임버스 회장이 평소에
줄기차게 설파하는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효과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이 조찬 강연회의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체임버스는 오전 7시 조찬강연, 9시 기자간담회, 10시
기자회견, 11시 국무총리 면담, 낮 12시 하나로통신과 제휴식, 오후
2시 강연회, 오후 4시 대중 강연회 등 빡빡한 일정을 거뜬히
치러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생기를 잃지 않았고, 대부분 같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하는 처지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일정에 쫓겨 점심식사도 샌드위치로 대강 때웠지만 건장한 체구에
걸맞게 활력이 넘쳤습니다. 13일 밤 10시에 도착, 다음날 새벽 6시에
일어나 그제서야 강연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강연을
시작했지만 즉석에서 말을 풀어가는 체임버스 회장 내공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 동상이몽의 강연현장
강연이 끝난 뒤 질문을 받는 와중에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한다는 여성이 기다렸다는 듯 일어서더니 억센 사투리를
섞어가며 "우리와 제휴할 생각은 없느냐"며 제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여자 분은 강연주제인 '인터넷 혁명'과는 무관한
기업홍보를 읊은 뒤 "왜 시스코와 우리가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 장황성을 늘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정치인이라고 밝힌 한 인사는 "체임버스 회장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 듣고 싶다"고 말해 다시 한번 분위기를 흐렸습니다. 체임버스
회장 표정에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주최측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시스코커넥션(시스코시스템즈와 존
체임버스의 성공전략), 넷 레디(e비즈니스 성공전략) 등 2권의 책을
증정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미리 전달해 읽고 오도록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시스코 명성에 기대려는 무리한 해프닝도 벌어져
조찬강연회가 끝나고 이어 시스코코리아가 시스코시스템즈가 어떤
회사인지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스타를 만난 것에
만족했는지, 아니면 이미 시스코에 대해 더 알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대부분 썰물처럼 빠져나가 썰렁한 설명회가 되버렸습니다.
하나로통신과 제휴발표를 하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하나로통신은 투자유치라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2억달러를 낮은 금리로 빌려주면서 자사 네트워크 장비를
우선구매한다는 조건을 단 일종의 '대출'에 불과했습니다.
체임버스 회장도 "지분 참여 등 직접 투자는 아니라 '론(loa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시스코의 명성을 등에 업으려는 속셈이 다소 무리한
홍보로 이어져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이위재 드림 wjlee@chosun.com
[IT조선닷컴 최신정보 보기- http://www.itchosun.com]
[콜린 박의 유학교실 보기- http://itchosun.com/echosun/hom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