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같이 찍는 게 소원입니다.”
지난 7일 성남체육관. 까무잡잡한 페루인 5명이 한국대표팀과의
친선경기 1차전을 끝낸 박만복(64) 페루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을
에워쌌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들은 "직접 한 번 보고 싶었는데
꿈을 이루게 될 줄 몰랐다"며 박 감독을 가운데 세우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82년 세계선수권 준우승, 88서울올림픽 은메달 등 배구 불모지
페루를 일약 세계 최고 중의 하나로 끌어올린 ‘맘보 박’ 박 감독에
대한 페루인의 사랑은 각별했다. 사업차 페루를 수차례 방문한 그의
고향 친구 이상필씨는 “내가 박만복의 친구인 것을 알고난 뒤부터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리마의 페루 국립경기장에는
박 감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는 페루의 ‘국민적 영웅’이다.
박 감독은 한국대표팀을 이끌던 73년 우루과이 여자월드컵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3위에 오른 뒤 대한배구협회를 통해 페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페루에 발을 디뎠다. 초창기 페루생활은 가시밭길이었다.
말이 안 통했고 음식은 입에 설었다. 보따리를 쌌다가 풀기를 수십번.
그러나 해외진출 지도자 1호라는 사명감이 그를 붙잡았다.
“이왕 온 거 끝까지 해보자.” 박
감독은 마음을 다잡았고 선수들은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식
훈련이 이어졌다.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수비동작, 위치 등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그리고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첫 선을 보인
페루 여자배구는 82년 세계선수권 준우승, 84년 LA올림픽 4강까지 오르며
'신화'의 예고편을 선보였다. 88서울올림픽에서는 페루 역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당시 페루 신문들은 "맘보 박은 페루만큼 가치 있다"고
극찬했다. 정치권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사람도 있었고 "국적을 바꾸라"는
'압력'도 받았다.
페루 배구를 세계 정상 반열에 올려놓은 그는 93년 11월, 19년 만에
대표팀 감독 사임을 '대국민 방송'으로 알리며 떠났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94년 일본 실업팀을 맡았고 그가 없는 동안 페루 배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작년 11월 박 감독은 페루 국민과 언론의 강권으로 다시 대표팀을
맡게 됐다. 자신이 만들어 낸 '페루 배구'의 침몰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박 감독은 '대표팀 운영에 대한 일체의 무간섭'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자신은 '무보수 봉사'를 기약했다.
지휘봉을 잡은 지 2개월 만에 그는 또 다른 신화를 만들었다. 시드니올림픽
남미예선에서 우승, 본선티켓을 따낸 것. 더욱이 아르헨티나에 0―2로 뒤지다
3―2로 역전승, 페루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렸다.
박 감독의 선수시절은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선수층이 두꺼운 속초고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해 인창고로 옮겨야 했고 국가대표 생활도 못해봤다. 하지만
지도자로는 두각을 나타내 이화여고(64년)·대한항공(71년) 창단 우승 등
숱한 트로피를 따내며 대표팀 감독까지 맡았다.
이제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하나 둘 자리잡고 있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는 "시드니올림픽 4강을 해낸 뒤 고향 속초바다에서 어릴 적
친구들과 회나 실컷 먹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