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간의 나무
정명환 최일남 남정현 유종호 지음
문학사상사


지나가 버린 시간은 다가오는 미래의 새로운 난제들에 지혜와 해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광속으로 확산되고 분화되는 디지털 시대의 현상 속에서
온고이지신의 관용어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끊임없는 단절과 단절이
소외와 위기를 체계적으로 생산한다. 따라서 사람의 속도와 같은 빠르기로
흘러가던 시간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광휘로 빛난다.

한 생애동안 일관된 '정신'으로 문학을 일구어옴으로써 문단의
든든한 밑자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정명환, 최일남, 남정현, 유종호
4인의 산문집은 우리 근대 문학사를 '네 겹의 깊고 넓은' 시선으로
조망하고 있다. 원로들이 '나'를 중심 화자로 내세워 펼쳐 가는
산문들은 단순한 개인사의 고백을 넘어 시대와 삶의 궁극을 체득하면서
얻은 정신의 품격과 우아함이 베어 나온다.

이미 고희를 넘긴 불문학자 정명환 선생의 글은 담담하고 원숙하기보다
여전히 치열한 대안 찾기의 열정으로 읽힌다. 서울의 중류가정에서 태어난
'착한 아이'였던 그는 '오동나무 상자 속의 사서오경은 나를 잡아 매두는
족쇄'였다고 고백한다. 당연히 그의 길고 긴 문학적 행로는 근대적 자아,
즉 존재의 진정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지성의 분석적 반성 작업을
포기해온 한국의 문학전통에 대한 그의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주요한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최일남 선생은 특유의 입담으로 궁핍과 가난으로 점철된 해방 전후의
'50년대'를 그려나간다. 칼럼과 소설 그 어느 쪽에서도 미학과 가치의
균형을 잃지 않고 당대의 풍속을 실감나게 재현해 가는 그의 문장은
능소능대한 대가의 풍모와 가식이 없는 겸손의 단아함을 보여준다.

단구의 ??한 선비인 그가 소년시절 축구선수를 꿈꾸었다는 일화는
예의 입담을 통해 맛깔진 풍자로 변모된다. 가볍기 짝이 없는 요즘
문학인의 약싹빠름에 대해서도 그는 뼈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거시기도 여물기 전에 상상의 세계를 문학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스러운' 일인지 묻는다.

남정현 선생은 자신이 겪은 분지사건(국보법 위반으로 구속)을 통해
작가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지켜나가는 부단한 자기성찰의 과정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아직도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문학은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김정환은 머릿글에서 남정현 선생의 글에 대해 '언뜻 구호처럼 완강해
보이는 대목에서조차 연민의 미학이 정말 간절하게, 눈물빛 그 자체로
반짝'이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유종호 선생은 오일륙 쿠데타를 겪은 그 시기 엄혹한 세상의 모습들을
마주한 스물 일곱 살 청년기의 일상에 대한 기억들과, 일제시대 유년기를
보내며 소년으로서 겪은 고단한 식민통치와 그 시기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애정 어린 기억들을 특유의 정확한 문장으로
촘촘히 그리고 있다.

유년시절의 알루미늄 도시락에 관한 기억이나 솔뿌리를 캐는 기억들은
무한한 서정적 상상력과 감흥을 일으키게 한다. (이영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