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이 안팎으로 난도질당하고 있다. 각종 개발이 규제된
국립공원 지역이 입구마다 각종 음식점과 숙박업소로 가득차고,
심지어 카바레와 나이트클럽까지 운영되고 있다. 국립공원을
보호해야 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각종 집단시설지구를 조성,
국립공원의 유흥지화를 도와주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공원
외곽지역도 저수지와 댐건설, 대단위 위락시설 공사로 국립공원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계룡산의 얼굴인 장군봉은 아랫도리가 훤히 벗겨지고 있다.
대전에서 공주로 접어들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장군봉. 동학사와
남매탑 등 문화유산들이 함께 있는 장군봉 주변은 이미 국립공원으로서의
풍광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10년전 장군봉 허리에 동학사 제2집단시설지구가
들어서면서 나무가 잘려지고 바위들이 깎여, 그 자리에 콘크리트 부지만
덩그러니 펼쳐져 있다. 온천개발을 위해 국립공원내에 부지를 조성했지만
시공업자의 부도로 오래동안 방치돼 지금은 시멘트 바닥에 잡초만
무성하다 . 개발당시 주민들은 “근처에 유성온천도 있는데 이곳에
온천을 만들어 무엇하냐”며 우려했었고, 그것은 현실화됐다.
이 문제의 땅 옆에 현재 충청남도(도지사 심대평)가 '자연사 박물관'을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박물관이 들어서면 장군봉 밑의 울창한 숲은
반이상 잘려 나가는 셈이 된다고 지역 환경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충청남도가 지역의 청운재단으로부터 500억원의 민자를 유치해 1만1000평
부지에 건설중인 이 박물관에는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돌과 보석
20만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최충식 부장은 "집단시설지구 땅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굳이 산림을 훼손하며 새로운 땅에 짓겠다는 것은 국유지를 값싸게
구입해 사익을 도모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충청남도와
청운재단측은 "박물관이 들어서면 계룡산이라는 왕관에 보석이 박히는 셈"
이라며 "국립공원에 박물관같은 공익적 시설이 들어서는데 환경파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2개월간 공사가 중단됐던 박물관 공사는 지난
13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현재 벗나무, 오리나무, 잣나무 등을 베어내며
진입로와 주차장 부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계룡산보전
시민모임은 박물관 건립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며 실력저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계룡산 뿐만이 아니다. 각종 개발규제 덕분에 한동안 상대적 안전지대로
남아있던 전국의 국립공원들은 무분별한 개발과 집단 이기주의 앞에 차츰
속살을 드러내며 신음하고 있다. 민간환경단체인 자연연구소(소장 이장오)에
따르면 전국 20개 국립공원지역중 숙박,위락시설이 있는 집단시설지구와
골프장, 스키장 등 단독시설물에 의해 훼손된 면적이 1289만2400여평에
달한다. 여의도의 14.2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허리를 관통하는 남원~구례간 관광도로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유신시절 국토건설단에 의해 닦인 이 도로는 원래 군사용
비포장길이었지만, 88올림픽을 맞아 관광사업을 개발한다는 미명하에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멧돼지와 야생노루가 뛰놀던 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이땅의 주인은 상인과 관광객들이 됐다. 민간인이 운영하는 시암재(900m)
휴게소에서는 멧돼지 굽는 연기와 요란한 음악소리로 가득해 이곳이
국립공원지역인지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한다. 도로변에는 아직도 절개된
산허리의 흉물스런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리산 남부사무소 정상진 운영팀장은 "10년 전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도로공사를 생각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
때문에 산림파괴는 물론 야생동물도 삶의 터를 잃어버렸다"고 밝혔다.
이 도로 덕분에 관광객들은 차를 타고 성삼재(1100m)까지 올라 걸어서
30분이면 노고단(1507m)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지리산 화엄사 입구 국립공원 지역에는 특급호텔은 물론 카바레와
볼링센타, 나이트 클럽까지 들어서 밤에도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개발 열기가 불어닥친 설악동과 백담사 계곡 등 설악안권의
훼손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돼 탐방객의 접근이 불허되고
있는 북한산 우이동 계곡에서는 식당과 가든들이 여전히 영업을 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