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공항동 35의7 「샬롬의 집」에는 장애인 16명이
오순도순 산다. 지하철에서 노숙하다 온 자폐아 홍순(24), 뇌성마비로
세 살 때 고아원에 버려진 명수(15), 뺑소니차에 치여 척추에 인공뼈
13cm를 심고 간질증세까지 있는 현숙(여·24)….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가슴에 안고 사는 이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평화」를 얻고 있다.
대가족을 이끌고 있는 「가장」은 박기순(40)씨. 고2 때 고향인
전남 고흥 뒷산에 소꼴을 베러 갔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바람에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됐다. 좌절에 빠져 살던 그는 95년 같은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정신지체 장애인이 세상을 원망하며 목숨을
끊자, 갈 곳 없는 장애인 4명과 함께 「가정」을 꾸렸다.
『처음 여기로 왔을 때는 모두가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어요.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뭐든 쉽게 포기하고…. 하지만 지금은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규모 수용시설과 재활기관 등으로부터 독립, 「가정」의 형태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공동체(그룹홈)가 늘고 있다. 정신지체, 자폐,
다운증후군 등 발달지체 장애인 4~5명이 한 가정을 이루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현재 전국적으로 185개. 대부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스스로 벌어 살림을 꾸려가는 가정도 많다.
「샬롬의 집」 장애인들도 전자부품을 조립해서 받는 60만~70만원에,
길거리에서 옷과 머리핀 등을 팔아서 번 돈으로 살아간다. 교회 몇 군데와
강서세무서 직원이 지원금을 보내지만 한 달 생활비 200만원을 대기에는
빠듯하다. 정부 비인가 시설이라 보조금 한푼 없다. 3평 남짓한 방
2개에는 번듯한 옷장 하나 없고, 세탁기가 고장나 겨울에도 손으로
빨래한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화면이 고르지 못한 TV에서
유명연예인이 나올 때면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식사 때가
되면 음식을 흘리는 「동생」들을 형과 언니들이 도와준다.
박씨는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좋은 옷을 입어본 적도 없지만
재미있게 살고 있다』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은 남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이곳이 제일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아파트에 있는 정신지체 여성자활공동체 「현진이네」
가족은 모두가 직장을 갖고 있는 경우. 명인(33)씨는 스포츠의류 생산업체,
현옥(31)씨는 전자회사, 은경(29)씨는 화장품 케이스 생산업체, 현진(26)씨는
컴퓨터부품 생산업체에 나가 옷가지 정리, 부품 조립, 상자 운반 등 간단한
일을 맡고 있다. 그렇게 해서 매달 35만~40만원씩 벌어 13만5000원을
생활비로 낸다. 현관 입구 메모판에는 「 밥짓기 천은경 빨래삶기 이현옥
세탁기돌리기 한명인 쓰레기통비우기 장현진」이라고 씌어 있다. 5월
한달 동안 각자 맡은 임무다. 밤 8시쯤 퇴근한 다운증후군 현옥씨는
『직장생활이 힘들지만 계속 하고 싶다』면서 『돈 많이 벌어 엄마 아빠께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현옥씨는 지난 어린이날에는 조카들에게 양말을
선물로 사준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다.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명인씨는 『엄마 생일 때 포도주를 사서 같이 마셨다』며 『내가 번 돈으로
가족에게 선물을 사주니까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립 정신지체복지관 최선자(37) 사회재활팀장은 『우리 사회가
정신지체인을 포용하는 방법으로 「그룹홈」이 가장 적절하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가정만큼 개인을 보살필 수는
없다』며 『어느 정도 재활능력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공동생활가정을
꾸밀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