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남북한 정상회담이 준비되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분위기 성숙국면이고, 두 번째는 직접협상 국면이다.
정상회담 분위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남북 모두에서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우리측 의지는 역대 정권마다 거듭 확인됐다. 5공 이래
역대 정권은 끊임없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구해왔다. 94년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김일성 주석과 개최에 합의까지 했다. 이 합의는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적어도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나설 의지만은 분명히 확인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북한의 잠수정 침투사건 등으로 냉각된 남북관계는 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새 국면을 맞이했다.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의 대북
포용정책은 현대의 금강산 관광 등의 결실을 보았다. 김 대통령은 98년
2월 취임사에서 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밝힌 이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어 남북한 공존공영의 상호 협력문제를
논의할 것"(2000년1월 20일 민주당 창당대회), "정상회담장소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2000년 2월 26일 조선일보 창간 80주년
인터뷰) 등의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 측은 이어 2월 북한과의 비공개 접촉에서 정상회담을 제의했으나,
북측에선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당국간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위기를 파악한 정부는 3월 9일 김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통해 경제지원 의사와 함께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반응은
의외로 빨랐다. 3월 15일쯤 고위급 비공개 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이어
베이징(북경) 등지에서 우리 측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한 측
아태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은 3월 17일부터 세 차례 비밀협상을
갖고 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합의했다. 발표는 4·13 총선 사흘 전인
10일 동시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