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2일 발표한 정부 수사기관의 불법감청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나, 정부 스스로 일부 불법성을 시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무엇보다 수사기관과 각 전화국의 감청 집행 및 관리 절차가 대단히
허술했다는 감사원 결론으로 미뤄, 그동안 법을 무시한 감청이 폭넓게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 수사기관의 불법감청 유형

법원 허가기간을 초과한 감청이 대표적인 사례. 서울 성북경찰서 등 4개
경찰서가 법원 허가기간을 넘겨 감청을 계속했음이 밝혀졌다. 허가기간이
끝난 뒤에도 경찰측이 전화국에 『감청 전용회선을 며칠 더 놔두라』고 하면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경찰청의 경우 영장을 받기도
전에 『영장이 곧 나올 것』이라며 사전 감청에 들어간 사례가 적발됐다.
이는 그동안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도 불법적으로 감청을 실시할 여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범죄수사 목적의 감청은 3개월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규정을 위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후에 영장을 제시하는 긴급감청도 지휘 검사 또는 경찰서장의
「긴급통신제한조치장」을 전화국 등에 제시해야 하는데, 서울 중부경찰서
등 3개 경찰서 직원들은 이를 생략했다.

전화국에 통화사실 내역 등 통신정보를 요청할 때도 수사관은 검사 또는
총경급 이상의 결재를 받은 공문서를 제시해야 하는데, 서울 노원경찰서
관계자 등은 임의로 문서를 꾸몄고, 광명경찰서 관계자들은 조회대상에
없는 자(8건 51명)들에 대해서도 내역을 받아간 것으로 밝혀졌다.

◆ 상식에 어긋난 음성사서함 감청 절차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이 법 절차에 따라, 휴대폰과 무선호출기의
음성사서함에 녹음된 내용 제공을 통신사업자측에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도 상식적으로 볼 때 통신사업자가 내용을 출력해 넘겨줘야
하는데도 정보통신부는 가입자의 비밀번호 자체를 수사기관에 넘겨주도록
지침을 내려 감청 대상자가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사생활이
공개될 우려가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비밀번호뿐 아니라 무선호출기의 고유번호(capcode)를 경찰이 넘겨받아
사용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 경우 호출기 복제가 가능해
영구적으로 호출내역과 음성사서함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통신부에 시정을 요구했다.

◆ 허술한 감청 관리실태

수사기관의 감청에 대한 협조 업무는 각 전화국의 실무자(시험실장) 한
사람이 전담하며 부서책임자(과장, 부장)의 감독은 불필요한 것으로 정통부는
지침을 내려두고 있다. 따라서 수사관이 영장을 시험실장에게 보여주면
전화국은 영장 사본을 보관하지도 않고 시험실장이 「통신제한조치집행
협조대장」에 사항을 기재하는 것만으로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우에 따라 「협조대장」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수사관과 실무자의 인간관계에 따라서는 영장 없이도 불법감청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 감사원 감사의 한계

감사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처음 실시한 불법감청 감사는 현실적
제약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감사원의 감사 기법에도 한계를
느꼈고, 대상이 검찰 등 권력기관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컸다』는 것이다.

당초 계획했던 국정원에 대한 감사는 아예 제외됐고, 감사 결과 발표도
검찰의 불법사항은 일절 포함되지 않고 경찰의 「가벼운」 불법사례로 채워졌다.

또 감사원이 발표한 연도별 감청현황은 감청기간에 관계없이 사건
건수를 통계낸 것으로, 1건에 대해 수십일간 수백여 차례 감청을 해도
통계로는 1건으로 기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