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본사가 주최한 제4회 LG배 세계 기왕전서 한국의 유창혁 구단을
3대1로 누르고 우승한 중국의 위빈(유빈·33) 구단은 내내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 최초의 세계 제패인 데다 4년여 만에 중국에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전날 첫 딸을 얻은 감격까지 겹친 때문이었다. 위 구단은 12일 조선일보
사옥에서 치러지는 시상식에 참석한 후 13일 「금의환향」할 예정이다.
―경사가 겹쳤다. 누가 가장 보고 싶은가?
『아내와 딸이다. 아내가 나보다 더 기뻐하더라. 둘 다 건강하다니 천하를
얻은 것 같다』
―지난주엔 잉창치(응창기)배서 4강에 올랐다. 요즘 발군의 성적을 내는
비결은?
『아내가 딸을 가졌을 때부터 행운이 계속되고 있다. 유창혁 구단도 2세를
얻으면 훨씬 더 성적이 좋아질 것이다(웃음).』
―아내는 어떻게 만났나?
『88년 입단 준비 중이던 아내(왕이칭·왕역청·26)를 만났다. 몇 년 전
세계 아마 여류대회서 한국의 조혜연을 꺾고 우승한 적이 있다. 아들을
낳으면 바둑을 시키려 했는데, 딸은 이창호를 못 이길 것 같아 생각 중이다』
―우승하기까지 고비는?
『결승까지 모든 판이 어려웠다. 조훈현 구단과의 준결승, 왕리청과의
8강전도 곡절이 많았다.』
―결승전 승률을 30%로 점쳤는데.
『유 구단이 나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곤마 싸움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과 국지전서의 급소 발견 등이 나보다 강하다. 결승 3, 4국서
이것을 용케 피한 것뿐이다』
―세계 최강그룹을 꼽는다면.
『역시 이창호 구단이 최강이다. 나머지는…(한참 망설인 뒤) 유창혁
조훈현 조치훈 마샤오춘 창하오 등이 초1류급이다. 나는 아직 아닌 것
같다.』
―프로기사가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고향(저장·절강)마을서 여류 몇 명이 프로가 돼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영향을 받았다. 12살 때 성(省) 소년대에 들어갔고 82년
삼단을 인정받았다. 스승으로 여러 분을 모셨다. 덩위(정위) 등 제자
3명을 키웠는데 벌써 나보다 낫다.』
―앞으로의 목표는?
『5년째 못 올라본 국내 기전 도전기를 두어보는 게 당장의 꿈이다. 내
나이 정도가 바둑의 절정연령으로 보며 시작도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