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00분에 촬영을 마친 영화가 나왔다. 한국 영화 평균 촬영횟수가
30-40회이고 평균 촬영기간이 한달 반에서 두달 사이임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작업이다.

영화 '실제 상황'은 2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주변에서
촬영했다. 감독은 꼭 사흘전 '섬'을 개봉한 김기덕. '악어'로 데뷔한
뒤 왕성한 창작력과 비타협적 스타일로 4편을 생산하며 주목받은 그는
신작 개봉 후 겨우 3일이 지난 상황에서 극단적 실험을 감행하며 하룻만에
뚝딱 영화 한편을 찍어냈다.

촬영 현장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러닝타임 100분. 단 한차례도 N.G를
허용하지 않고, 촬영 종료 시 단 한번 컷을 부르면서 물 흐르듯 영화 한
편을 찍겠다는 전대미문의 시도 때문에 촬영 직전 주연 주진모와 배우,
스탭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날 촬영에 나선 카메라는 모두 18대.
'실제상황'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이 카메라를 동원하는 기록도 세웠다.
김감독도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에 나섰다.

거리의 화가가 신비한 소녀의 이끌림에 따라 억눌러왔던 충동을 곳곳에서
폭발시키는 내용을 다룬 이 영화는 12개의 단편을 묶은 구조. 마지막
촬영분인 마로니에 공원 장면을 찍은 것은 4시20분. 현장에 구경나온 수백명
사람들의 소음이 그대로 담기는 가운데, 주진모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옆에서 우발적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감독이 '컷'을 외치자
모두들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작업 종료를 축하했다. 몇몇 보도진과
구경꾼들이 김감독과 주진모에게 몰려들었다. 그 장면 또한 촬영되어 영화
종반부에 넣게 된다.

이날 N.G는 단 한번, 촬영 장소 중 하나인 꽃집 앞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생겼다. 주진모가 장소를 이동할 때 타이밍이 안 맞아 대기하는
시간이 있었을 뿐, 촬영 사이사이 감독은 배우에게 따로 연기 지도도 하지
않았다. 단 200분만에 촬영을 마친 '실제 상황'은 곧바로 편집에 들어가
5월27일 개봉할 예정. 주진모는 2주 리허설에 단 하루 촬영으로 5000만원
출연료를 챙기는 진기록도 세웠다. 촬영을 마치자 주진모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김감독은 "오래 전부터 영화를 하루에 찍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했다"며 "배우가 한 호흡으로 펼치는 연기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동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