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사고 장애인 80%가 골방에서 지내죠" ##

『네살배기 어린 딸을 데리고 처음으로 공원에 나들이 갔을 때, 다른
아이들은 다들 자기 부모와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는데 우리 딸만 제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안양시 석수동 「해처럼 달처럼 사랑의 집」 사무국장 윤봉근(41)씨는

온 종일 휠체어를 타고 안양, 하남, 서울, 인천 등지를 누빈다. 그가

가슴에 안고 다니는 커다란 가죽 가방엔 장애인 관련 기관과 단체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두툼한 수첩과, 몸 안에서 호스를 통해 소변을 빼내는 기구인

「넬락톤 세트」가 들어 있다.

남 모르게 하루에 다섯번씩 몸 안에 고인 소변을 빼내면서 윤씨는 벌써
5년째 각종 재활정보를 모으고,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돕는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북 남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명동과 도쿄를 오가며
보따리장사를 하던 윤씨는 지난 92년 1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다. 꼭 40일을 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그 해 10월
퇴원했지만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부업으로 테니스
코치를 할 만큼 스포츠를 즐기던 윤씨였지만 남들 도움 없이는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는 『처음 교통사고를 당했을 땐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했다』며
『몇 번이나 술을 마시고 고속도로에 뛰어들었다』고 했다.『그러던 중 자식
치료비 때문에 집을 팔고 나이 칠순에 다시 건어물 행상으로 나선 노모(74)가
울면서 「네 새끼 생각하고 마음 굳게 먹으라」고 했을 때 문득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고 말했다.

음주운전이라 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장사를 하면서 사뒀던
연립주택과 부모님 고향 집까지 다 팔아야 했다. 부인(37)은 가출했다.

노모와 주변의 설득으로 기운을 차린 윤씨는 93년부터 전국 동사무소, 구청,
장애인복지관을 돌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각종 기관과 정부에서 제공하는 재활혜택에 대해 남보다 잘 알게
됐다. 윤씨는 95년 이 같은 재활정보를 모아 「장애예방과 재활정보 가이드」
제1권을 냈고, 97년엔 제2권을 냈다. 부모가 포기한 장애 어린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고, 알맞은 시설을 물색해주는 일도 윤씨 몫이었다.윤씨가 다시
서면서 가출했던 부인도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만난 장애인 80% 이상은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골방에서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주면 우리 나라에서도 스티븐 호킹 같은 장애인 석학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