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라
메리 파이터 지음
공경희 옮김, 모색.

"젊은이들에게는 천당이지만 노인에게는 지옥이야." 삼십여 년 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소감이었는데, 요즘 우리 사회가 바로 그
모습이다. 첨단 사회를 주도하는 청년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부패와 구태로
오염된 뒷방늙은이 취급하고, 말없이 희생하는 효자 효부 상은 사극에서조차
등장 않는다. 미숙한 청년 중심의 문화로 개조된 탓이다. 그런 반면에
아직까지도 일부는 노인들과의 갈등으로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저자 메리 파이퍼는 이런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동시에 위로한다. 노인과
잘 사는 요령, 혹은 나이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따위의 가벼운
처세술은 아니다. 대중심리학자들이 흔히 범하는 어설픈 조언, 천박하고
이기적인 세계관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심오한 철학이나 정치한 심리 분석
이론을 담고 있지는 않다. 대신, 저자 자신의 체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내담자와의 상담 등에 녹아 있는 따뜻함이 돋보인다. 행동요법이나 실험
통계 위주의 미국심리학계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아주 독특한 태도이다. 특히
대중에 영합하여 이상한 모습으로 왜곡된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노화를
두려워하는 미국의 물질문명의 삭막함에 대한 비판적 태도도 높이 사고
싶다. 노인을 공경하는 동양문화권을 부러워하는데, 우리 나라에 와 본다면
곧 실망할 것 같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서양자녀들보다 오히려 부모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자녀가 더 많은 것 같다는 경험을 자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분노, 억울함, 증오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성인 자녀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실제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자신도 곧 노인이 되리라는 점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노년을 어떻게 설계 할 지에 대한 좋은 지침을 얻을 수 있겠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며 눈물이 핑 도는 경험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 파이퍼는 마치 감상적인 영화처럼 독자를 감동시킨다. 파이퍼의
글재주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만난 노인들이 지닌 고통과 사랑의 강렬한
힘 때문이다. 파이퍼는 『노인의 마지막 목표는 깨달음, 혹은 영혼의
성장』이며 『영혼이란 견디는 것,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이상 숭고한 인생의 과제는 없을 것이다. 『하느님은 이 모든 고통을
주셨지만, 이 고통들을 견디는 힘도 함께 주셨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노인은 늙고 병드는 과정에서 예수나 부처와 같은 심오한 체험을 하지
않았을까. 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의 미래에 대한 사랑이다. 청년시절
만큼이나 노년도 빛나고 아름다울 가치와 권리가 있다. 노년을 소홀히
하고 죽음을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성숙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죽음을 맞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이별하기 위해 서로를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이별은 깊은 사랑을 통해 아름답게
부활한다. 「또 다른 나라」는 그런 재생을 돕기 위해 매우 유용한
책이다. (이나미ㆍ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