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기둥이 된 적송, 까만 잿덩어리로 변한 땅, 타버린 새 둥지들….
지난 17일과 18일 이틀간 강원 영동지방 산불 현장의 생태계 조사에 나선
서울대 농생대 이돈구 교수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산이 아니라 차라리
검은 사막입니다. 한반도가 숨쉴 수 있는 허파가 잘린 것이지요.』 이런
탄식은 불모지대로 변한 삼척, 강릉 등 동해안 일대를 돌아보며 계속됐다.
특히 고성군 죽왕면 일대는 잿덩어리 마저 강풍에 휩쓸려 날아가 암석층이
그대로 드러나 나무가 살 최소한의 땅마저 사라졌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본 면적은 1만4000여㏊. 서울 여의도 면적의 48배에
달하는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96년 고성 산불 지역의 생태계 변화과정을 매년 조사한 산림청 자료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수분을 흡수하지 못해 땅이 굳어지는 현상이 4년째 지속.
곤충이나 미생물은 3년이 돼도 안보임. 텃새 둥지는 2년이 지나야 나타남,
참나무 등 일부 관목림 3년째에 형성.」
그러나 재앙은 이처럼 불탄 지역만으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학계는
경고한다. 동·식물의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씨앗이 퍼지지 못해 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것은 불탄 면적의 2~3배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재가
씻겨나간 하천에는 부영양화가 발생하고, 바다의 양식장에도 햇빛을 가로막는
백화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불지역은 1년 만 지나면 잡초와 수풀이 보여 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나무를 심어
눈에 보이는 산림만 복구하려 들지 말고, 생명의 땅으로 살아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