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끼리 약어로 「에이치몰(H-mole)」이라 부르는 병이 있다. 산부인과
질환으로 임신시 수정란에 문제가 생겨 태반 기형이 일어나는 병이다. 태아가
영양분을 섭취하려면 태반조직이 엄마의 자궁을 쑥쑥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포도나 연어알처럼 뭉글뭉글해지는 병이다. 태아는 임신 아주
초기에 사망하나, 엄마는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완치율이 아주 높아 다음
임신을 기대할 수 있다. 한자어로는 「물주머니 모양의 태반 기형」이란 뜻의
「포상기태」라고 한다. 어느 대학병원의 의사가 환자에게 이 병명을 알려주자
친정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가족은 「포상기태」를 「포기상태」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낯선 의학용어 때문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례이다. 환자가 병명을 잘못
알아듣거나 듣고도 잊어버리는 일은 흔하다.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무슨
병이었냐고 물으면 『심장이래요』란 대답을 종종 한다. 무릎수술 환자는
십중팔구 『관절이래요』라 한다.
퇴원환자가 반드시 할 일은 자신의 질병상태를 요약한 소견서를 받는 일이다.
심장수술을 받은 사람에게는 감기해열제를 잘못 써도 큰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원환자 뿐 아니라 병원을 옮길 때에도 꼭 소견서를 지참해야 한다.
충분한 설명없이 『다른 병원가니깐 소견서 못써주겠다』고 하는 의사는 요즘엔
거의 없다.
( 김치형ㆍ제주세화가정의학과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