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부활한 화산은 문명세계를 온통 화산재로 뒤덮었다.
초라한 몰골로 변한 온천도시는 거역 불가능한 운명에 몸을
내맡긴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용암 대폭발」을 기다리고 있다.

분화 10일째의 홋카이도 우스산. 화산은 갈수록 기세를 올리고
있다. 산 중턱의 2개 지점에 형성된 분화구군에선 고도 1300m에
달하는 분연이 잠시도 쉬지않고 치솟는다. 수증기와 화산재가
뒤범벅이 된 거대한 연기기둥을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다.

화산지역 입구에서 교통을 차단하던 경찰은 긴급취재 허가를
내보이자 취재차량의 진입을 허용했다. 단 『절대 대로변을 벗어나지
말고 신속하게 통과할 것』을 조건으로 붙였다.

피해지를 남쪽으로 우회하는 나가와~다테간 국도 37번으로 들어섰다.

전 주민 긴급대피령이 내려져있는 도로 주변은 말그대로 「유령도시」다.

이따금 급하게 질주해가는 경찰차량이며, 자위대 군용트럭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그림자는 없다. 도시의 머리위에 솟아있는 화산 역시 그저

소리없이 분화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통행금지 표지판을 치우고 화산
쪽으로 직행하는 230번 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전진하는 것과 비례해
화산 세력권이 강해진다. 불현듯 화산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간다,
프라이팬이 타는 악취에 유황 성분이 섞여있다. 텅 비어있는 학교
운동장엔 채 녹지않은 눈위로 화산재가 시커멓게 엉겨붙어 있다.

도로에 생긴 균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괴력의 거인이 시루떡을
들었다 놓은 것 처럼 여기저기가 뒤틀린채 까만 아스팔트 내장을
드러내놓고 있다. 지반융기를 동반한 「화산성 지진」이 할퀴어놓은
흔적이다. 도로 전체가 마치 물결을 타고있는 것 같다.

관광객으로 흥청거리던 도야(XX)역 구내엔 셔터가 내려져있다. 그
바로 앞 건널목은 철로가 비틀어져 있어 열차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곤 보이지 않는 고립지대다.
무심하게 적·황색의 점멸을 계속하는 신호등은 외부세계와 끈이 끊어진
지역임을 말해준다.

계단처럼 융기해 올라간 아스팔트 단층이 앞을 가로막는다. 높이
50㎝는 됨직한게 자동차 전진이 더이상 불가능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화산은 코 앞까지 다가와있다. 원자탄의 버섯구름 모양으로
솟아오르는 연기기둥에서 가공할 에너지를 느낄수 있다. 만일 지금
용암분출이 시작된다면 여기까지 덮쳐오는데 10초도 안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화산밑 3개 소도시의 운명은 풍전등화다. 분화를 사전예측해 유명해진
화산전문가 오카다(홋카이도대학) 교수는 『2주일 안에 대폭발(용암대분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지않다』고 경고한다. 지금 땅속에선 펄펄 끓는 용암이
맹렬한 기세로 헤집고 다니며 지층의 약한 틈을 찾고있다. 일단 뚫고 나오면
도시는 불바다로 변해 형체없이 소멸할 것이 틀림없다.

화산은 분화 10일만에 화구를 30여개로 불려놓았다. 직경 수십 m 짜리
분화구가 매일 한두개 꼴로 새로 생겨나는 중이다. 화산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경관이 아름답다는 도야온천 쪽으로 공격목표를 잡은 듯하다. 7일엔
진흙열탕이 뿜어져 나와 도야온천가를 휩쓸었다.

반대 방향의 아부타 쪽으로도 용암류가 분출돼 태평양 해안까지 이를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와있다. 그런가하면 지반이 뒤틀리며 땅이
갈라지는 지각변동의 세력권은 갈수록 광역화돼간다. 위기가 한발씩
다가오고 있다.

위험지대에서 다테시로 빠져나왔다. 방재활동에 동원된 자위대 제7사단의
대거주둔으로 다테는 계엄도시를 연상케한다. 시청옆 피난소. 1만3000여명에
달하는 대피주민중 이곳엔 220명이 수용돼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지난달말
갑작스런 대피령으로 달랑 몸만 피신해왔다. 기쿠치 도미코(64·여) 씨는
『지갑과 휴대전화와 당뇨병 주사약밖에 못챙겼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그놈」이 올 것이라고 각오는 했었지.』 가족 6명을 이끌고
피신온 하라 헤이이치(69·멜론경작) 씨에겐 태어나 세번째 겪는 화산 경험이다.
우스산은 지난 300년간 약30년 주기로 분화와 휴식을 반복해왔다. 하라씨는
『우리 아버지는 「메이지 폭발」(1910년)때 60㎞ 떨어진 무로란 바닷가까지
피난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삶이란 「화산과의 동거」다. 언제 잠에서 깨 심통을
부릴지 모르는 화산을 베개삼아 살아왔다. 23년전 「쇼와분화」 때는
50여일을 피난했고, 그해 농사도 망쳤다. 그래도 이 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하라씨는 말했다. 이유를 묻자 즉각 『고향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화산은 부활할 때마다 새로운 산(용암돔)을 만들어놓고 있다. 우스산은
지반융기로 최근 몇 백 년간 생긴 작은 신산들의 집합체다. 1943년 분화때
생긴 402m 높이의 쇼와신산이 특히 유명하다.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보리밭이 쑥쑥 솟더니 어느덧 산이 되더라』고 술회한다.

이번 분화때 산이 창조될 것에 대비, 「헤이세이 신산」이란 이름이 준비됐다.
우스산에선 아직 「천지창조」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