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지 감독의 '러브 레터'를 보았다. 아주 오래 된 기억
저켠에서 끌어낸, 젊은 날의 사랑을 감독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가슴을 일렁이게 만들었던 '러브 레터'는 마땅히
도서대출표의 뒷면에 그려져 있던 작은 그림이었을 터이다. 뿐만
아니다.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것은 배경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던, 소담스럽게 혹은 광포하게 퍼붓던 눈발이었다.
시가지도, 들판도, 산도 모두 눈으로 덮인 채 배경이자 상징의 역할을
유감없이 수행하고 있었다. 이 배경은 마치 은빛 여우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일본의 풍경이었으며, 일본인의 정서에 깊이 녹아든 상징이었다.

우리네 어린이문학을 들여다볼 때에도, 더러 한번쯤은 생각해 본다.
우리네 정서와 꼭 맞아떨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 민족적인 상징
혹은 전형적인 인물 형상이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는지. 그러나 그런
작품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파란 눈의 인형을 그리듯, 우리네
작가들 역시 국적 없는, 민족적 정서에 어떠한 공감도 안겨주지 못하는
동화를 짜내고 있지나 않은지 염려된다.

물론 옛이야기 속에서는 호랑이나 까치, 참새, 초가집, 도깨비 등이
끊임없이 우리네 이야기임을 환기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동화의
경우이다. 있지도 않은 호랑이나 도깨비를 언제까지나 써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림동화나 환타지동화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권정생,
이억배, 정승각 등 몇몇 작가들을 손에 꼽을 수 있을 따름이다. 볼 수 있는 꿈결같은 정원, 의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개척지가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에게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적 정서의 탐구에 게으른 작가만을 탓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출판사들의 잘못도 크다. 번듯한 출판사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재빨리 외국의 작품을 번역해 내다 팔거나 이러저러한 문학상을 꾸려나가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없는 것보다 그나마 나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창작동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가득 찬 우리네 작가를 발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나 몇몇 작품에 시상을 하는 것은
잘 영근 과실을 사오거나 따는 것이지, 땀으로 얼룩진 힘겨운 노동이 없다.
지금이라도 출판사들은 함께 힘을 모아 썩 괜찮은 어린이문학의 월간지라도
하나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네 작가들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을 때, 민족적 특성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할
것이다. (김상욱/춘천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