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고난의 섬」 오키나와가 일본의 새로운 성장센터로 주목받고
있다.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밀집해 「밀리터리 아일랜드(군도)」로 불리는
곳. 태평양전쟁때 주민 4명중 1명 꼴로 죽어간 곳. 일본 최악의 빈곤지대인
이 섬이 변신을 거듭하며 21세기형 발전모델의 첨단을 달리기 시작했다.
류큐왕국이 꽃피웠던 찬란한 해양문명의 땅 오키나와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편집자 )

오키나와 북서쪽 부세나(부뢰명) 해안. 바다가 온통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이 아름다운 휴양지에 지금 전세계 이목이 집중돼있다. 3개월여 뒤면
G8(선진7개국+러시아) 정상이 이곳에 모여 「세계주식회사」의 정례 안건을
논의한다. 2000년대 첫 G8 서밋(정상회담)이다.

지난주 회담장이 완공돼 보도진에 공개됐다. 오키나와 전통의 붉은
기와가 남국의 따가운 햇발을 받아 청명하게 반짝거린다. 회의장 이름은
「만국진량관」. 「세계에의 가교」라는 뜻. 15세기말 교역왕국 류큐에
울려퍼진 종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종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 『류큐는 남해의 승지(유토피아)로서

「삼한」의 지혜를 모으고….』 삼한이란 물론 한반도다. 고·중세에 걸친

한반도와 활발한 교류사의 흔적이 섬 곳곳에 있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란 이상향이 오키나와에 실재했다는 설도 우리로선 예사롭지 않다.

G8 서밋을 오키나와는 도약의 기폭제로 삼으려 한다. 취재중 만난 민·관
관계자들은 『류큐왕국의 번영기인 「대교역시대」 종언 이후 400년만에
맞이한 절호의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그 기대감을, 오키나와는
「국제도시구상」이란 슬로건에 담았다. 중국·한국·일본·동남아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거점도시로 부상한다는 웅대한 계획이다.

오키나와 남서부 기노완시. 이 도시 한가운데를 주일미군의 후텐마
헬기부대 기지가 꿰뚫고 있다. 마치 군기지에 시가지가 붙어있는 형상이다.
기지 면적이 시 전체의 33%에 달하고, 미군의 소녀 폭행사건 같은 사고가
빈발했다.

오키나와는 G8이란 범지구적 무대를 통해 국제여론에 호소할 생각이다.
기지를 반환받은 후의 계획은 이미 다 짜놓았다. 회의장과 호텔을 지어
컨벤션 산업을 유치하고, 국제물류·유통의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계획.
「밀리터리 아일랜드」에서 탈피하려는 오키나와의 꿈이 상징적으로 담겨져있다.

지금 오키나와엔 「1국·2제도」의 거대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동부
해안가의 나카구스쿠 공업단지. 이곳에 입주하는 기업은 세금·관세가 거의
면제되는 파격적 혜택을 받는다. 「특별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해 일본의
여느 지역과 다른 별도의 세제를 적용키로 한 것.

자유무역을 필두로 많은 특별지구가 섬 곳곳에 마련될 예정이다. 섬
최대도시인 나하엔 디지털·소프트웨어 산업유치를 위한 특구가 조성된다.
「금융특구」를 설치, 싱가포르와 경쟁하는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려는
구상도 본격화됐다. 오키나와 당국은 지난주 조사단을 아일랜드에 파견,
더블린형 금융센터 연구조사에 착수했다.

3∼4년 전까지 오키나와는 「과거」가 지배하는 섬이었다. 반전운동과
안보투쟁의 성지였고, 「기지반환」 슬로건만 존재했다. 가혹한 시련의
역사를 겪은 오키나와로선 당연한 반작용일 수도 있었다.

1945년 봄의 오키나와는 「죽음의 섬」이었다. 섬에 상륙한 미군과
일본군이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10여만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가 강요된 집단자살이었다. 「항복대신 죽음」을 재촉하는 일본군에
의해 주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 밖에 없었다.

종전 후에도 오키나와는 25년간 미 군사통치를 받아야 했다. 토지가
강제수용돼 섬 면적의 20%가 군기지로 변했다. 실업률은 일본 평균의 2배.
변변한 산업이라곤 관광·기지산업 뿐이고 1인당 소득 일본 최하위인 빈곤의
섬으로 전락했다.

더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시점에서 오키나와의 변신이 시작됐다. G8
서밋의 개최권 획득은 중요한 전기였다. 서밋의 단기·직접적 경제효과는
107억엔(약1000억원).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수효과는 헤아리기
힘들다. 예컨대 서밋을 위해 섬 전체에 고속통신회선망이 깔린다. 이는
「정보통신 아일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기시모토 나고시장은 말했다.

무엇보다 오키나와는 천혜의 「지경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도위에
원을 그리면 서울·상하이·홍콩·마닐라가 비행시간 2시간 가량인 반경
1500㎞ 안에 들어온다. 이를 토대로 21세기엔 물류·유통·관광과
정보통신·소프트웨어의 허브(거점)도시로 부상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오키나와의 도전은 「소프트 혁명」으로도 불린다. 「하드」는 포기하고
오로지 소프트 산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다.

(*나고(명호)=박정훈기자 jh-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