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수입니다. 히트곡도 별로 없는 가수입니다. 거의 유일한 히트곡이
'화개장터'입니다. '화개장터' 내용은 제발 지역감정 없이 오손도손 잘
살아보자는 얘기입니다.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에 가보면 경상도 전라도
같은 거 따지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노래입니다.
내용이 좋아 그런지, '화개장터'는 여전히 인기입니다. 어딜 가도
그 노랠 부르라고 아우성입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여년이나 불러댔는데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러니입니다만, '화개장터'는 지역감정 얘기가
왕성할수록 잘 팔립니다. 하긴 지역감정이 아니라면 '화개장터'는 그렇게
의미있는 장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 입장은 참 딱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잘 있던 정치인들이 느닷없이
지역감정 타파를 부르짖으며 법석을 떱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훌륭한
정치인들 덕분에 지역감정이 싹 없어진다면 저는 어딜 가서 '화개장터'를
부르겠습니까?
하지만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없애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수록
'화개장터'는 점점 더 인기입니다. 불러젖히면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그런
걸 지켜본 저는 선거철만 되면 후보마다 나라 걱정하는 표정으로 지역감정
소리 꺼내는 게 말짱 허풍이라는 걸 눈치채게 됐습니다. 속된 말로 '쇼
부리는' 것이지요.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당,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당,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당으로 착착 들어가 앉아 서로에게 지역감정 조장한다고
손가락질을 해대니,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각자 원해서 출신 지역당에
들어갔으면 차라리 구호를 '지역감정을 살립시다'라고 바꾸는 게 정직한
태도 아니겠습니까?
꼭 비꼬려고 하는 소리만은 아닙니다. 원래 자기가 태어난 지역을 아끼는
감정은 좋은 것입니다. 고향 사람끼리 뭉쳐 화목하고, 고향 사람을 국회에 많이
올려보내는 것은 얼마나 정감있고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정치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겁니다. 한줌밖에 되지 않는 그들이 자기들 뱃속만
채우려는 욕심에서 지역성의 참뜻을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대한민국 정치는 지역주의를 껴안고 커왔습니다.
거기 관한 한 우리는 집단 죄인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요란 떨수록 그 상처가
덧나는 것도 선거마다 진저리나게 겪었습니다. 그럴수록 '화개장터' 인기만
높아집디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 지역감정 소리를 입에 담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하나가
분명합니다. 머리가 너무 나쁘든지, 시커먼 딴 욕심이 있든지. 설마하니 이
조영남이 줄기차게 '경상도 전라도…' 노래를 불러 먹고 살게 해주려고
그러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유권자 여러분.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