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를 날로 먹는 곳은 세계 곳곳에 있다. 고기를 얇게 썰어 접시에
편 후 소금, 후추로 간하고 올리브 기름, 파마산 치즈를 얹어내는 이탈리아
음식 '카파치오'나 프랑스의 '비프 타르타르'는 유럽의 대표적인 날고기
요리다.
타르타르란 말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타타르족(Tartar)이
생고기와 내장을 먹는다고 말한데서 시작된다. 그러니 결국 쇠고기를 날로
먹는 것은 아시아가 뿌리인 셈이다.
한국의 육회는 불란서나 이태리 요리와 다른, 섬세한 맛을 최대한
살린다는 게 큰 특징이 다. 고기는 고기 대로 양념 간하고 아삭하고 달콤한
배를 곁들인 뒤 다시 달걀노른자로 부르럽게 마사지 하듯 버무려 먹는 한국
육회는 서양식 육회의 얄팍한 맛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을 자랑한다. 뉴욕의 이름난 한식당들도 육회 메뉴로 단골을 둘 정도다.
그러나 육회를 차려내는 데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항상 그렇듯 넓은
상추잎 한장, 그 위에 육회를 얹고 잣가루 채친 배, 가늘게 져민 마늘 쪽,
보름달처럼 자리잡은 달걀 노른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어디를 가나 판에
박은 듯한 육회 차림이다. 집집마다 식당마다 분위기와 모습은 다 다른데 육회
접시는 이렇게 똑같아야만 하는지…
육회를 펼치지 말고 한번 쌓아올려 보자. 차림이 달라지면 음식조차
달라보인다. 한사람 씩 자기 것을 먹을 수 있게 차려주면 최고급 코스 요리로
부족함 없다.
육회 부위는 요리사마다 선호가 다른데, 안심이나 우둔 등 기름기 없는
부위가 좋다. 먹기 쉽게 고기 결 반대 방향으로 썰어 참기름과 간장, 마늘로
양념해 무쳐놓는 것까지는 기존 육회와 같다. 그러나 배는 채치지 말고 둥근
원반처럼 되게 얇게 썬다.(가운데 씨부분만 파내고) 육회와 배를 한 켜씩
탑쌓듯 얹거나, 배를 접시에 전체적으로 깔고 자그맣게 육회를 한 무더기씩
얹으면 여러 사람이 나눠 먹기 편하다. 배를 갈아 얼려서 셔벳처럼 만든 후
육회 위에 조금씩 얹으면 먹는 동안 차고 달콥한 즙이 흘러 색다른 맛을 준다.
석류가 나는 가을에는 잘 익은 석류 몇 알을 접시 바닥에 놓아본다. 새큼한
석류 맛과 구슬같은 아름다움이 육회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음식연구가ㆍ설치미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