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를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넘긴 시인 최영미(39)가 불혹을
앞두고 선택한 장르는 산문이다.
"저도 이제 꼼짝없이 중년에 들어서는 거겠죠.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지난 날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많이 반성했어요. 남에게 준 상처, 남에게
받은 상처 모두를 어루만지는 글들이 많죠?"
시인이 어렵사리 지나온 30대의 삶을 곱씹어 정리한 편린들을 모아 낸
산문집은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사회평론). 맨 첫머리에
실린 글이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란게 심상찮다. "난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때 난 스물두살의 대학생. 첫 사랑에 미쳐 있었던가.
후회는 언제해도 늦다."
작년 9월 시인은 속초에 자기만의 집을 마련했다. 일곱살 무렵 1년 동안
살았던 속초, 그가 시인이 된 92년 등단작 제목도 '속초에서'다. "혼자
사는 여자가 속초에서 하루 종일 뭘 하나 궁금하죠? 세끼 밥만 해먹어도
하루는 금방 가요. "
이번 산문집의 주조는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이다. 그러나 건강하다.
"지금 난 세상이 나를 이해하기를 감히 바라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 나를
맞춰야겠다." 밥하기 싫어 종종 가는 식당 아주머니의 "혼자 사슈?"라는
질문에 이제 시인은 "남편이 출장 중인데요"라고 받을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고 했다. 이번 책에 실린 '나와 거짓말'은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여기저기 잡지에 쓴 글들을 모은 책은 잡스럽기 십상이다.
이번 책도 잡지에 쓴 글들의 모음이긴 하지만 '참 어렵사리 쓴 글들'이라는
느낌이다. "그렇게라도 억지로 쓰지 않았으면 책 못냈을 걸요. 원고지 6장
쓰는데 2주일 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