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신화와 현실'
박지향 지음
서울대출판부, 1만2000원
제국주의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 열띤 논란을 불러
일으킨 주제였다. 당시에는 제국주의의 원인을 독점자본의 발전에서 찾는 레닌
식의 경제적 해석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제국주의는 더 이상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이름 아래 세계화의 구호만이 크게 들릴 뿐, 우리 사회가 겪었던 식민지
경험마저 망각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박지향 교수(서울대ㆍ서양사)의
'제국주의:신화와 현실'은 이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면서 우리의 삶에
남아 있는 제국주의의 흔적과 자취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박교수는 지난 수 년간 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교하는 연구를
계속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두 나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에 앞서서
먼저 제국주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박교수가 현재 진행중인 제국주의 연구의 중간 결산인 셈이다.
이 책은 먼저 경제적 해석과 그 비판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근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진행된 탈식민 문화이론을 통하여
제국주의가 정치 경제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현상임을 강조한다. 제국주의
세력이 만들어낸 담론과 이미지가 식민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가를 살핀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 사람들에게 남긴 근대사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와 담론을 비판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구인들
또한 제국주의에 따른 왜곡된 문화의 담지자였다. 식민지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규정되었듯이,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도 식민지 지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논란을 일으킬 부분은 아무래도 5장과 6장이 아닐까 싶다. 이
장들에서 다루는 주제는 제국주의 협력세력과 식민지 근대화의 문제이다.
저자에 따르면, '협력'은 식민지 지배의 메커니즘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으로서 그 협력세력을 일방적으로 제국주의 추종자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식민지 근대화 문제 또한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식민지 사람들이 생각한 근대의 이미지가 무엇이든지 간에 근대화는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절충론은 식민지 지배와 그 경험을 철저하게 성찰하는 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위험도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탈식민 문화이론이 지닌 한계를 강조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이 새로운 경향은 이제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고 또 뚜렷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론은 지금까지 서구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왔던
우리의 시각을 재조정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 같다. 나는 영국과 일본
제국주의에 관한 박교수의 후속 연구가 나온 후에 이들 주제를 둘러싸고 좀더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영석 광주대교수ㆍ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