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언문’으로 불리던 시절, ‘내간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 문체를 만든 것은 규방 여성들이었다.
현대 한글을 '서예' 경지로 끌어올린 주인공도 여성이었다. 궁에서 쓰던 글씨체 '궁체'를 갈고 다듬어
'갈물체'라는 단아하고 기품있는 한글 서체를 만들어낸 갈물 이철경(리철경) 선생. 1914년 개성에서 태어나
평생을 교육자로, 서예가로 살다 1989년 76세로 작고한 갈물 선생 10주기를 지내며, 문집 '희망과 정성으로
엮은 세월'(호미)을 맏아들 서기석씨와 맏딸 경옥씨 등 자녀들이 펴냈다. 가족, 친지와 우인들이 고인을
그리는 글도 담았다.
"우리말 사용 조차 어렵던 일제 무단 통치기에 태어난 어머니가 누구보다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개발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하는 경옥씨는 "외할아버지가 교감으로 근무하시던 배화여고에서 완벽한 한글
철자법과 조선 역사를 배우면서 한글 궁체에 몰두했다"고 전한다.
그 첫 결실인 ‘궁체쓰는 법’은 선생이 불과 19살 때, 1933년 출간됐으나, 나온지 일주일만에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
한글 서예의 기초로 궁체가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초등글씨본'과 '중등글씨본' 각 3권씩을 내면서. "아내이자
어머니, 교육자, 예술가, 여성 운동가로 일인 다역을 열심히 살았던 어머니 삶을 후세 여성들이 기억하고
본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생의 부군은 서울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서정권씨. 가수이자 방송인
서유석씨가 막내 아들이다. 1958년 창립한 갈물서예회는 여동생 꽃뜰 이미경 선생이 중심 되어 회원
5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