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유성기 SP음반에 담긴 대표적 가요 217곡을
CD 12장에 복각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Ⅱ'가 나왔다. 신나라뮤직이
낸 이 복각판은 해방 이전 가요를 복원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Ⅰ
(1925~1945·곡 수록)', 근대 판소리 5명창 복각판, '유성기로 듣던
연극 모음'에 이어 근대 대중문예의 원형을 되살린 또 하나 쾌거다.
유민영 교수가 그 의미를 짚었다. (편집자주)

지식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누구나 즐기는 예술 양식은
아마 대중가요일 것이다. 사람들은 날마다 방송 매체 등에서 불려지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고단함을 잊곤 한다. 식민지시대, 해방의
혼돈, 동족상잔, 산업화 소용돌이 속에 우리가 끈질긴 생명력을 분출할
수 있었던 것도 강인한 민족성과 함께 음악, 연극, 영화, 방송예술 같은
대중문화의 위로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지난 시대의 노래, 연극, 영화, 방송드라마 등 대중연예와
구전예술은 근대 무형문화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중예술은 무관심 속에 버려지거나 유실됐고, 그 결과 우리는 정서의
고향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실향민처럼 미국 대중문화의 홍수 속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유성기시대인 1920년대부터 40년 동안의 대중가요, 판소리, 연극 대사,
무성 영화의 변사 해설, 넌센스, 만담,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등 우리
대중연예와 구전예술의 뿌리들은 대부분 5000여장의 SP음반에 담겨졌다.
그 속에는 지난 시대 민중들의 정한(정한)이 구비구비 서려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생활 풍정과 시대사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신나라뮤직은 이런 근대 정서의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1980년대 초부터
외국까지 뒤진 끝에 5000여장의 SP음반 중 3000여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10년에 걸쳐 하나 둘씩 CD로 복각해낸 것이다. 이번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Ⅱ'는 1925~1945년을 정리한 시리즈 Ⅰ편에 이어 대중가요 부문을
총정리한 중요한 작업이다.

수록된 작품은 남인수, 백설희, 현인, 송민도, 박재란, 장세정, 황금심,
신카나리아, 나애심, 백난아 등 당시 유명 가수들의 육성 원곡은 물론, '백치
아다다' 같은 영화 주제가, 장안의 화제였던 '장희빈' 같은 인기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까지 망라했다. 이로써 우리는 판소리, 가요, 영화, 연극,
방송 드라마 등 근대 대중예술의 절반 이상을 거의 온전히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송만갑 등 근대 판소리 5명창 복각, 유성기로 듣던 연극 모음, 그리고
유성기 가요사 Ⅰ,Ⅱ로 이어진 일련의 복각 작업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구전예술인 판소리 유파를 제대로 계승하게 되었다. 둘째는
필름마저 사라졌던 무성영화시대 영화사와 연극사를 부분적으로나마
되살려냈고, 세번째로는 초기 가요사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하게 됐다.

최근들어 역사학계도 정치사 중심에서 벗어나 점차 생활문화사에 주목하는
마당이다. 기록과 자료가 빈약하던 근대 대중문예사의 재생은 그런 맥락에서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단국대 교수,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