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 2년째를 맞고 있는 서울 모 중학교의 박모(29) 교사는 매주
열리는 교직원회의 시간만 되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 전날 지역교육청에서
내려온 각종 공문 내용을 전달하고 각 부장들이 일주일간 계획중인 업무를
보고하고 나면, 으레 교장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하고….』 박씨는
『회의가 아닌 일방적인 브리핑』이라고 말했다.

신학기만 되면 교육청에서는 각종 공문요청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농구장
시설보고, 학교 체육시설 실적보고, 학생봉사활동 실적보고…. 『누가봐도
형식에 치우친 보고이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요. 누가 감히 교육청에
대고 항의를 하겠습니까?』(서울 신원초등 양정암 교사).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창의성은 과연 얼만큼 보장되고

있을까? 교사들은 입을 모아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지시와 감독은 있지만 자율과

피드백(feed back)은 없다」고 말한다.

행정자치부가 공무원 제안제도를 통해 매년 접수하는 직무개선 아이디어중
교사들이 제시하는 것은 불과 20여건. 그나마 이중 채택된 것은 지난 97년
광주지역 모 교사가 제시한 「학교금연지역 선포」와 지난 99년의 「방음커튼
아이디어」등 2~3건이 고작이다.

이같은 교육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교사들의 아이디어 빈곤은 「학교
공동체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교사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교육부-시·도교육청-지역교육청-단위학교로
이어지는 귄위주의적-수직적 상하관계로 인해 경직돼 있다는 주장이다(서울
방원중 신난수 교감).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지난 97년 발표한 「교원직무체계 연구」에 따르면
학교의 교육목표 및 방침 수립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교무회의가
차지하는 비율은 14.3%에 불과했다. 반면 교장-교감은 24.1%, 담당주임이
18.9%로 나타났다. 그만큼 일선학교의 의사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루지지
않고 있다.

한국교총 김경윤 교권옹호부장은 『교장 교감 부장교사 등 일부 관리자들의
권위주의적인 자세도 문제지만 최근 들어서는 교과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이기적인 간섭도 교사들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가 지난해 교사, 학생 학부모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학교운영의 자율성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교사는 21.4%, 「그저 그렇다」는 답변이 42.8%로 부정적인 대답이 훨씬 많았다.

서울 초등학교교장회 최재선 회장은 『학교내부에 토론문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는 교육청이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모두 간섭하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학급반장이 명칭상 위화감을 줄 수 있다며
명칭을 「회장」으로 바꾸고 수개월 단위로 번갈아 시키라고 지시했다. 교사의
자율재량에 맡겨야 할 특기적성시간 운영에도 이런 저런 지침과 간섭이 끊이질
않는다.

흔히 청소년들이 「19세기 교실의 20세기 선생님」이라고 말하듯, 급변하는
세상에 대해 활짝 열려있어야 할 학교가 말단 행정조직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전교조 대전지부 문성호 지부장).

문 지부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주번교사」제도를 들었다.
주번교사는 말 그대로 방과후 청소지도나 시설물 점검을 담당하는 교사로,
일제시대 학사운영 방식의 잔재중 하나. 교사들은 주번교사의 업무가 담임교사와
별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이를 없애자고 주장해왔으나, 학교장들은 『교육청에서
별 얘기가 없는데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느냐』며 난처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씨는 『지역교육청에서는 학교장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현장의 분위기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 교사는 『교무회의에서 소위 「튀는」 교사들이 눈총을 받는 것은 아이들
세계와 똑 같다』며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진도만 가르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교사를 더 이상의 발전도, 변화도 없는 매너리즘에 빠뜨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가령 평교사가 승진하는데 필요한 경력점수, 근무평정, 연수성적, 부가점수 중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근무평정은 교장-교감이 매긴다. 결국 평교사들이
관리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각급학교가 평가권을 거머쥔
지역교육청의 눈치를 살피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장학사의 기능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각 시·도
고교에는 본청에 담당 장학사가 지정돼 있다. 이들의 주요업무는 단위학교에 대한
장학-지도-감사이기 때문에 행정구조의 최말단에 있는 일선 교사들이 본청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서울 덕산중학교 김학한 교사는 『교사와 일선학교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청의 역할도 지금의 지도-감사에서 학교지원센터 기능으로 하루 속히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