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 혁명으로 대만은 역사의 새 장을 열어 젖혔다. 집권 국민당의
대만 경영 51년사에 종지부를 찍는 출발점에 서 있다. 국민당 장기 집권으로
누적된 온갖 부정과 부패는 이제 청산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국민당은 지금까지 정계와 재계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해왔다. '대만
최대의 기업은 국민당'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정경유착이 극에 달해 있다.
천수이볜(진수편) 선거운동 본부 총부(총부)주임 리위안지(이원기)씨는 "천
총통 시대엔 헤이진(흑금ㆍ검은 돈) 처리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당은 지난 49년 대만에 건너온 뒤 일본이 남기고 떠난 기업들을
모두 인수, 당 재산으로 만든 뒤 엄청난 돈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쓰러져 가는
기업엔 돈을 빌려주고, 실질 경영권을 지배했다. 타이베이 시민 리쉐헝(이학항)씨는 "국민당은 국가 재산과 당 재산을 구분하는 개념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영화 입장권에도 국민당 후원 단체 지원금 명목의 세금을 붙였다.
국민당의 부정 부패에 진저리가 난 국민들이 조직의 귀재이자 대중적
카리스마를 지닌 쑹추위(송초유)에게 등을 돌린 것도 그가 국민당 뿌리를
지닌데다 '헤이진', '헤이다오(흑도ㆍ폭력조직)'와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98년 천수이볜을 물리치고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던 국민당의
마잉주(마영구)가 법무부장(장관)으로 있을 때 부정부패 사정에 손을 댔다가
결국 자리에서 밀려난 것도 국민당이 개입된 부정부패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견고한지를 보여준다. 국민당이 정권교체에 대비해 당 자금과 관련된 각종
장부를 정리해왔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 문제는 조만간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당 재산관련 수사가 시작될 경우 국민당은 당 운영과 조직을
완전히 탈바꿈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배, 타이완으로 건너왔던 장제스(장개석) 총통
휘하의 국민당은 대만을 작지만 부유한, '미국의 불침 항모'로 성장시켰다.
75년 장제스가 89세로 사망한 뒤 '대만 재정의 백과사전'이라는 옌자진(엄가금)
총통을 거쳐 장징궈(장경국) 총통 시대로 이어질 때까지 국민당 철권 통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장징궈 총통이 말년에 본토화와 일부 민주화를 시행하기는
했지만 큰 줄기는 변한 것이 없었다.
88년 장총통의 뒤를 이어 리덩후이(리등휘) 시대가 열리면서 변화의 신호탄이
올랐다. 리 총통은 본토화를 더욱 밀고 나가는 한편 직선제 도입 등 민주화
조치를 취해갔다. 대만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리 총통이 대만 독립 성향을 보이면서 국민당의 정통
노선에서 이탈하자 국민당은 분열됐다. 당 원로들이 총통 비판에 나섰고
일부는 아예 신당을 만들어 딴 살림을 차렸다. 리 총통은 이번 선거에서
노구를 이끌고 롄잔(연전)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중화민국 만세, 국민당
만세'를 부르짖었지만 국민들의 민주 의식을 자신이 일깨웠다는 측면에서
그가 정권 교체의 최대 공로자라는 평가도 있다.
리 총통은 민주화에 큰 공을 세웠지만 국민당의 검은 돈 커넥션은 뿌리뽑지
못했다. 대만에 선거 혁명을 가져온 뇌관은 바로 국민당의 극심한 정경
유착이다. 천 총통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이 유착을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들은 19일부터 국민당과 공직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고 전한다.
장제스는 국민당에게 '대륙 회복'의 유지를 남기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지만 국민당은 이제 자기 혁신이 시급하다. 새로운 대만은 새로운
국민당 건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