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기쁘고 보람있었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한 중국음식점에서 「문학과 지성」사 김병익
대표의 퇴임식이 거행됐다. 1970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 창간 이후
30년. 성년이 된 이후 거의 온 삶을 바쳐온 그가 '현장'을 떠나는 자리였다.
"돌이켜보면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는 김씨의 말은 그와
「문지」와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문학과 지성 직원들은 "퇴임 후에도 우리 곁에 있어 달라는 뜻"이라며
그에게 팩시밀리를 선물했다. 문지 2세대를 이끌 '문학과 사회' 동인
권오룡씨는 행운의 열쇠를 전달하며 "선생과 함께한 세월이 우리에게
행운이었다"는 말로 섭섭함을 전했다.
퇴임의 자리는 그러나 유쾌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는 "김 대표는 부인을 소시적부터 쫓아다니다가 대학시절까지
여러 차례 딱지를 맞았다"는 말로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좋아한 만큼
잘하지는 못했던 그의 바둑 실력도 도마에 올랐다. 식이 진행되는 세
시간여를 그렇게 웃음과 박수로 채웠다.
김 대표는 지난 94년 문학과지성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할 때부터 퇴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2년 전부터는 '2000년 봄'이라고 퇴임시기를 못박았다.
그리고 이날 그 약속을 지켰다. 회사와 창업자가 운명을 같이한다는
출판계에서 김씨는 오히려 치밀하게 퇴임을 준비해 왔다. '문학과 사회'에
이어 3세대 경영을 책임질 '이다' 동인들을 키움으로써 문지를 공적 자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퇴임소식이 신선감을 준 것도, 퇴임식장에 웃음이
넘쳐난 것도 약속을 지킨 이의 미덕 때문인 듯 싶었다. 떠나야 할 때가 왔는데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활보하는 우리 사회에서 김씨의 준비된 퇴임식은
모처럼 상쾌한 기분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