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하 선생님. 기괴한 환상과 매혹적인 상징으로 정밀하게 짜여진 선생님의
작품은 낯선 미학적 충격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새 소설 '풍경의 내부'는 "케케낡은 순결의 문제"를 다루고 있군요.
순결의 주제와 관계되는 인간 본성의 조건과 성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시적인
서사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설화를 바탕으로 한 서정주의 산문시 '신부'가
모티브가 된 것도 흥미롭군요. 첫날밤 신부를 음탕한 여자로 오해하여 집을
뛰쳐 나갔다가 수십년 후 다시 와보니 신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더라는
섬뜩한 이야기. 주인공 역시 신부의 과거를 알고 신혼 여행지에서 도망쳐 온
사람이고, 그는 '서례'라는 여자를 만나 내적인 전환을 경험하고 정신적
질곡을 치유받게 됩니다. 그 여자는 그의 내부에 도사린 순결에 관한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와 자기 기만을 자각하게 해주고 그것을 씻어주는 '여사제'의
존재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군인의 비석을 들고 다니고, 관계망상이라는
정신질환을 자칭하며, 스스로 창녀임을 주장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이 소설이 군사통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
같군요. 개인의 무의식과 육체 안에까지 스민 지배 이데올로기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이런 반제도적인 여성성이 요구되었던 것이 아닙니까? 성적으로
무기력했던 남자가 둑길 밑에서 여자와 치르는 육체적 결합은 절실한 자기해방의
느낌에 닿아 있습니다. 그 영롱한 순간에 순결한 여자에게서 남자는 오히려 '지쳐
누운 창녀'를 봅니다.

안타깝게도 소설의 결말은 행복하지 않군요. 그러나 작가의 비관적인 통찰
너머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의 감각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타자의 내면을, 그
'풍경의 내부'를 받아들이는 일, 혹은 순결의 자기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그토록 위험한 일이라 하더라도, 바로 거기서 다시 사랑이 시작되려는
것이 아닐까요?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