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안되는 이유는 '101가지'가 넘겠지만
역시 가장 결정적인 것은 토론문화 부재다. 아예 토론을 할 줄 모른다. 철학자
하병학박사의 '토론과 설득을 위한 우리들의 논리'(철학과 현실사)는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한 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21세기는 논리의 르네상스 시대입니다. 특히 민주주의를 본격화해야 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논리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논리학책을 읽을 수도 없다. 하박사는 "논리적 사고를 하기 위해
논리학 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책이 우선 흥미로운 것은 신문기사, 유명정치인의 발언, 교과서, 단행본
등에서 잘못된 논리사용의 풍부한 용례들을 끌어들인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각종 TV토론에서의 발언들도 수시로 등장한다. 특히 한국 여야 정당에 대한
사례가 많다. 이들의 주장은 「자가당착, 원천봉쇄, 피장파장」 등으로 가득해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김대중대통령의 옷로비사건 관련 사과문과
이회창총재의 세풍관련 사과문도 도마에 올랐다. 각각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와 '어쨌든'이라는 부사구를 달고서 사과했다. 하박사는 "문제가
된 실체는 인정하지 않고 사과만 했으니 사과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말발'도 토론과 설득의 논리에서 중요한 용어다. 하박사는 말발의
원천으로 법적 지위, 단체에서의 계급, 사회적 신망과 인격, 전문지식, 개인적
관계, 말의 표현 등 다양한 요소들을 꼽는다. 우리 식으로 목소리만 크다고
해서 말발이 먹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책 후반부에서 그는 한국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수많은 논리상의 오류들을
열거한다. "북어와 여자는 패야 맛이다"는 속설에 대해 그는 "유사하지도
않은 것을 유사한 것으로 주장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오류들 중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일단 공론화하는 스캔들의 오류, 의도
확대의 오류, 모든 것을 환경탓으로 돌리는 의지와 환경 혼동의 오류, '일본은
아무 것도 아니다'고 강변하는 객기의 오류, 자존심 자극의 오류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오류들이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