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사 티파니 와이즈, 덕수궁 돌아보니―

티파니 와이즈(24). 캐나다에서 온 영어강사다. 한국에 온 지 딱 일주일.
제대로 된 서울 구경은 아직 하지 못한 그녀와 함께 덕수궁 나들이를 나섰다.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승하한 곳』이라는 지초 지식을 바탕으로 와이즈씨는
궁궐을 구경했다. 그리고 하는 말, 『안내판 영어가 너무 어려워요.』 명색이
영어강사라는 캐나다 사람이 영어가 어렵다고 했다. 과연 어떻게 적혀 있길래.

대한문 초입 왼편에 서 있는 덕수궁 대표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A century later, as all the king's palaces in Seoul had been burn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when King S njo returned to Seoul

in 1593 he took up temporary residence here.』 임진왜란 1년 후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보니 궁궐이 다 불타서 이곳에 거처를 정했다는 말이다.

와이즈씨는 『나 같으면 as를 지우고, 1592에서 문장을 끊은 뒤 when을 지우고

새로 문장을 시작했을 것』이라며 『그게 우리들이 쓰는 문장이요, 입말』이라고

했다. 안내문을 읽던 와이즈씨는 이 문장을 반복해 읽은 뒤에야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문법적으로는 백점이지만 영어 사용자들에겐 관광지에서 만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딱딱하고 긴 문장이다.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 안내판도 마찬가지. 어려운 단어 하나 없지만 그녀는
어려워 했다. 『King Kojong used it after 1897 when he came to this palace
after leave in the Russian legation where he had sought refuge after the
murder of Queen Min.』 문장은 안내문에 석줄에 걸쳐 있었고 한 문장에
「after」라는 단어가 무려 4개였다. 한국어로는 『고종이 민비 사후
아관파천에서 돌아와 1897년부터 사용했다』지만 「직역」을 한 덕택에 이처럼
해괴한 문장이 돼 버렸다.

세종대왕상 안내문 역시 그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음∼ sagacity가
뭐죠?』 민중서림 에센스 영어사전에 따르면 sagacity는 「총명, 영민」이라는
뜻이다. 빨간 글자에 앞에는 중요하다고 별표까지 돼 있다. 와이즈씨는
『sagacious의 명사형인 것 같은데, 그냥 sagaciousness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문장이 길어지고 단어가 어려워질수록 실제 사용하는 영어에서 멀어진다.
안내문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모두 세줄 이상 걸쳐 있는 장문으로 가득했다.

철자법 틀린 것이나 오역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다음은 와이즈씨가 찾아낸 오기 사례다..

berieved: believed(믿어지는·추정되는)의 오기(오기)
cylrincial: cylindrical(원통형)의 오기
bestroyed: destroyed(파괴된)의 오기

double roofed: two story roof(2층 지붕)의 잘못된 표현. 와이즈씨는
『처음 보는 표현』이라고 했다.

on the main:사전에도 없는 표현이다. 한글 안내판에는 「주로」라고 돼
있다.

단수·복수를 틀린 것이나 대소문자 잘못 쓴 것은 차라리 귀여울 정도다.
와이즈씨는 『궁궐같은 역사적 장소를 설명하려면 어려운 단어가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적잖은 예산과 고급인력을 들여 만들었을 안내판이 이처럼
영어를 「괴롭히고」 있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와이즈씨를
끝까지 당황스럽게 했던 곳은 광해군과 인조 즉위식을 올렸던 즉조당. 『Kwibi
m, the royal concubine of King Kojong, resided here from 1907 till her
death in 1911.』 한국어는 『고종의 후비 엄비가 순종 융희 원년부터 승하한
후까지 거처하던 곳』이었다. 와이즈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종이라는
왕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냐는 것. 『?』 문제는 royal concubine이라는
표현. 사전은 concubine을 「첩, 내연의 처」라 풀이했다. 졸지에 황제와
후비가 부도덕한 내연관계로 변한 것이다. 그것도 「왕실(royal)」에서.
석어당 안내문이 인목대비를 Queen Dowager라 한 표현도 유사한 경우다.
dowager는 「귀족 미망인, 왕후의 미망인」이라는 뜻. 실생활에선 쓰임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