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번엔 수학이다. 대학원 첫학기 때인 87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이라는 책을 내놓아 주목받았던 사회과학 학술운동권의 대표적 논객
이진경박사(37ㆍ사회학)가 '수학의 몽상'(푸른숲)이란 뜻밖의 책을 펴냈다.
90년대엔 프랑스철학 영화 등에 관한 책도 썼고 '우리 근대성'에 대한 천착을
하다가 갑자기 '수학책'이라니.

"지난 1세기에 걸친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비판할 때 늘 지적되는 문제가
서구 근대성의 뿌리는 제대로 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그 뿌리를
수학과 자아 혹은 개인이라고 봅니다."

이 책은 서양 근대의 정신을 이루는 수학 철학 과학을 넘나든다. 수학에
관한 입문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근대철학의 원조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를 만물의 출발점으로 삼았을 때 그 생각이 바로 '수학적 사고'에
가깝다. 자연에 대해 수학적으로 사고하면서 서구의 근대과학이 급격히
발전한다. 그는 과학발달사를 '자연의 수학화'과정으로 읽는다.

그렇지만 이 책은 수학의 정신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명백히
「수학책」이다. 수학사의 주요 고비를 집중적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면서
수학에도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수와 기하학의 탄생, 기하학과 대수의
교류 장인 해석기하학의 등장, 미적분의 '발명', 칸토르의 집합론이 수학에
준 충격 등이 주목의 대상이다.

말만 들어도 위축되기 쉽상인 이런 분야의 설명을 위해 저자는 박중훈과
최진실의 대화를 등장시키고 수시로 영화이야기를 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까지 활용한다. 결국 이 책을 읽어줄 주요 독자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저도 고등학교때 수학은 잘 했어요. 수학을 잘한다는 건 문제를 잘 푼다는
뜻이지요. 근데 그걸 왜 하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왜 수학이 올바른 근대사회를 정립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부수적 효과를 기대한다면 혹시
수학에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서 수학을 즐기게 됐으면 하는
것이다. 수학이 즐거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 이 책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