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전 포로수용소에서도 입버릇처럼 "대통령 되는게 꿈" ##
## 현부인 만나자 집요한 구애...갑부인 장인덕봐 정치적 입지 ##
베트남 전쟁 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미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아리조나). 뉴욕 타임스는 27일 매케인을 이해하려면 이 변신
과정을 알아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이 가장 덜 알려진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매케인 의원은 이 「변신의 시기」에, 세 자녀를 혼자 키웠던 조강지처
캐롤과 이혼하고 돈많은 미인인 현재의 부인 신디와 결혼한다. 하지만
매케인측은 『신디와 만나기 전 이미 전처와 별거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초혼 실패 책임은 인정하지만, 여태껏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거부해왔다.
타임스가 집중 조명한 변신기의 매케인은 이렇다. 73년 3월 베트남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매케인은 석방됐고, 「전쟁 영웅」이 됐다. 허지만 팔다리는
부러지고 만신창이 신세였다. 모델이었던 아내는 69년 자동차 사고에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지만, 목발 신세가 돼있다. 체중도 불어 있었다. 매케인의
평소 신념은 『역사책에 기록되는 인물이 되겠다』는 것이었고, 베트남 포로
수용소에서도 동료들에게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매케인은 일단 다시 해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는 일념으로, 주 2회,
한번에 2시간씩 강도높은 물리치료를 악착같이 받아냈고, 9개월뒤 다시
유망한 해군 장교로 복귀한다.
이후 매케인은 상원의 해군 연락 장교로 임명되면서, 친화력과 솔직함을
토대로 영향력있는 상원의원들과 각별한 관계를 쌓아갔다. 그의 역할은 상원
의원의 해외 나들이때 가방 들어주는 것.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나이」는 자존심은 강했다. 당시 제독들이 비서를 통해 전화를 걸고
자신을 기다리게 하면, 일단 전화를 끊고 『당신 만큼 나도 바쁘다, 나와
얘기하려면 직접 전화하라』고 말할 정도로 직선적이었다. 그러나 강경한
자존심과 더불어 로비력과 친화력도 구비하고 있었다. 카터 행정부가 대형
항공모함들을 소형으로 교체하려 했을때 상원의원들을 은밀히 규합해
백악관의 계획을 무산시킨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매케인은 지나친 솔직함과, 베트남전 부상으로 제독의
꿈을 잃고, 방황했다. 그러다가 79년 4월 상원의원들의 중국 방문길에 들른
호놀룰루의 해군 주최 연회에서 현재의 부인 신디를 만나고 이후 6개월간
집요하게 구애했다. 동시에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타임스는 아내 캐롤은 갑작스런 이혼 요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79년말 별거에 들어가 80년 3월 마침내 이혼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매케인은 즉각 신디와 결혼했다. 결혼식에 세 자녀는 물론 참석하지 않았다.
아들 앤디는 타임스에게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는데 4년이 걸렸지만,
신디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평소 친근하고 점잖고 남을 잘 돕는 매케인 의원이 아내를
잔인하게 취급하는데 깜짝 놀랐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지금처럼 그때도, 실수한 뒤 솔직한 뉘우침과 매력으로 다시 친지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심지어 전처 캐롤 조차 타임스에게 『존을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 캐롤은 현재 그의 선거 운동을 돕고 있다.
파나마 운하에서 태어난 매케인은 새 결혼에서 「고향」을 얻었다.
아리조나주에서 대형 양조업을 하는 장인 덕분에 유명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82년 1월 아리조나주로 옮긴지 열달만에, 그는 이웃 지역구에서
사퇴하는 연방 하원의원의 뒤를 이어 출마를 선언했다. 친구들은 타임스에게
『그는 기성 정치권 후보가 아니었고, 지금처럼 그때도 처음엔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매케인처럼 전처를 선택하는데 운이 좋았던 후보는 없으며,
그는 아마도 몰래 바람피워 이혼한 뒤에도 전처의 지지와 선거운동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