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초등학교 3학년 4반 교실. 「Science」시간이다. 아이들은 영문판
「자연3-2」교과서를 펼쳤다. "You need two wires to light up the bulb, one negative and one positive."(전구를 켜려면 전선이 두 개 필요해요. 음극과
양극에 이어야죠). 미국 출신 캐더린 파이퍼씨가 교사다. 4~5명씩 조를 짠
아이들은 전선을 연결하는 데 여념이 없다. 아이들 하는 양을 챙겨보던 파이퍼
선생님이 경실이에게 말을 걸었다.

“Do you think it’s going to work, Rina(리나야, 불이 들어올 것 같니)?”

“No(잘 안돼요).” “Why not(왜 안되지)?” “Because…oh,I see! I didn’t

put the positive wire(왜냐면… 알았다! 양극 전선을 안 이었어요).” “Okay.

Try again(좋아. 다시 한 번 해봐라).”

파이퍼씨는 "수업 시작 전 그날 배울 단원에 나오는 영어 단어를 미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간단한 쪽지 시험을 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한다"며 "아이들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천천히 반복한다"고 했다.

영훈초등학교가 97년 입학생부터 시행하고 있는 '집중반'(Immersion Program)
풍경이다. 열린 교육을 하고 있는 이 학교는 자연, 수학을 영어 교사에게 맡겼다.
교과서는 박성방(박성방·66) 교장이 국정 교과서를 직접 번역, 외국인 교사
감수를 받았다. 『유학 시절, 자나깨나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며 달달 외웠어요.
어느 날 교수가 부르더니 「말은 무조건 외우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라며 「사전을 버리고, 온몸으로 영어를 배우라」고
하더군요.』 95년 교내에 인터넷 전용망을 깐 것도 영어 수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다. 박 교장은 『인터넷에 떠있는 고급 정보가 어마어마해 깜짝 놀랐다』며
『영어와 정보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영어권 담임선생님을 구할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영어를 무서워 하지 않는 아이들이 요즘 우리 주변에 많아지고 있다. 교과목
수업을 영어로 하는 곳은 사립인 영훈초등학교 하나지만, 영어 회화는 공사립학교
모두 필수다. 취학 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도 열기가 대단하다.
원어민 교사들이 영어만 쓰는 곳도 많다. 강남구 일원동 S학원. 네 살짜리
혜영이는 "May I have wo… wowowowo…"하다가 박수를 받았다. water란
단어가 안 떠올랐지만, 한국말로 하면 야단맞기 때문에 끝가지 버티다 실패한
것. 아직 우리 말도 제대로 입에 안 돌아, "안뇽하셰요"하는 꼬마가 이중언어
학습을 하는 현장이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 선일초등학교. 34년 전인 1966년부터 전교생 영어 회화를
의무화했다. 영문과 출신 전임 강사 2명이 1학년 2학기부터 저학년은 주 2시간씩,
고학년은 주 4시간씩 회화 수업을 전담한다. 졸업할 때쯤이면, 외국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이중언어」(Bilingual)수준이 된다고 이봉학(55)
교감은 자랑한다.『최신 국내외 교재를 비교 분석, 우리 실정에 알맞은 교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게 비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영어 공책」이 따로 없는 것도 특징이다. 비디오, 노래,
회화를 통해 아이들이 영어를 즐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감은
『선생님이 칠판에 쓰고 아이들이 그대로 받아 적고 따라하는 수업은 죽은
교육』이라며 『중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럽게 딱딱한 교과서를 통해 영어를
접하면 아이들이 심리적인 저항감을 갖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말로
익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처럼 수준 높은 어린이 영어 학습이 대부분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맡겨져 있다는 게 한계. 공립학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야
교과 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1, 2학년 학생들은 전적으로 학원, 학습지,
개인 교습으로 영어를 익힌다. 실험적인 교육 방법을 시행하는 곳도 대부분
사립학교다. "아이에게 영어 학습지를 시키고 있지만, 원어민 교사에게 배우는
아이들을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한 어머니의 걱정은 단순한 시샘이
아니다. 교육 예산으로 원어민 수준 영어 전담 교사를 공립학교에 배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최근 높아지고 있는 사실을 귀담아 들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