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국적 개방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국경이 무너지고 경제 사회 문화가
하나로 융합하는 시대에 부응하려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단일민족 신화」 '단군혈통'에만 매달려 있다. 한민족
혈통을 타고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으며, 귀화라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외국인이 한국 국적의 시민이 되기란 까다롭기가 그지없다.

말로는 '세계 속의 한국'을 떠들어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뿌리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 94년 한국여성 백미숙(36)씨와 국제 결혼한 파키스탄인 모하메드 나딘
이크발(34·파키스탄 대사관 근무)씨. 그는 지난해 말 천신만고 끝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파키스탄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카라치대를 졸업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그는 관광비자로 입국했다가 불법체류 상태에서 백씨와 결혼했다. 이후
강제출국과 2년여의 입국규제를 거쳐 97년 어렵사리 어학연수용 비자를 얻어
재입국에 성공했다. 하지만 귀화시험이란 '암벽'이 버티고 있었다.

『툭하면 비자기간이 연장되지 않아 쫓겨나기 일쑤인데 '계속 거주 2년'이란
조건을 채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비자 문제로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사정사정 매달려보기도 몇 차례. 그럴 때마다 '내가 무슨 죄를
졌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외국인이 귀화시험에서 60점 이상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 초등학교 고학년 참고서를 외우며 공부했지만 결국
'삼수'를 해서야 시험에 통과했다.

외국에도 귀화시험이란 게 있지만 의사소통이나 간단한 상식을 테스트하는
의례적인 시험일 뿐이다. 우리처럼 예상문제 풀어가며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야
하는 '귀화고시'는 없다.

결혼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간이귀화)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저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살길 원하는 사람(일반귀화)들은 국적 문제에
시달려보곤 아예 발길을 돌리거나 국적 취득을 포기하기 일쑤다. ▲5년 이상
계속 국내 거주 ▲만 20세 이상 성년 ▲품행방정(전과경력) ▲생계능력(직업과
재산 3000만원 이상) 등 요구사항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국적=순혈주의」라는 한국민의 고정관념이다. 한때 한국 국적
취득을 고려했던 토마스 오코노 대치동 외국인학교 교장은 "한국이 좋아
20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결국은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말한다.

선진국들이 잇따라 국적 문호를 개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국외에서 조달한다는 발상이다. 외국에서 고급두뇌, 자본, 값싼
노동력 등을 끌어오는 데 국적이란 꼬리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의 고급두뇌들은 외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한국은 그들의 몇%나 끌어왔는가. 국내 컴퓨터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알렉산드르(32)씨는 "한국은 취업비자 얻기가 너무 까다로워 이스라엘과 동남아
국가로 많이 갔다"고 말했다. 1930~40년대 미국이 이민법을 완화해 유태인 등
유럽의 기술자나 과학자 등 고급두뇌를 우대하며 끌어모은 결과 미국 과학계가
수십년을 도약했던 역사는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서울대엔 '외국인 교수'가 한 명도 없다.
지난해 7월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기 전까지「외국인은 국립대학 교수가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발이 묶여 있었다. 여러 명의 외국인 학자가 서울대 교수직을
노크했다가 이 규정에 걸려 포기하고 돌아갔다. 적극적으로 우수한 해외
인력을 모셔와도 시원치 않은 판에 수십년간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다. 이제
법은 바뀌었지만 외국인을 꺼리는 풍토는 여전하다.

캐나다 국적을 포기하고 97년 귀국한 서울대 이공계 M교수(60). 캐나다에서
인정받는 지질학자였던 그는 "모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도와달라"는 학교측의
권유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모국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귀국해서 1년 넘게
불안한 강사 신분으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더니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는 작년 말 어렵사리 정교수가 됐지만
답답함은 여전하다. 10년 이상 교수로 근무해야 정년 후 연금혜택을 받는데
이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교수 정년임기(tenure)와 연금이
보장되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귀국했는데…. 솔직히 후회스럽다"고 했다.

미국 시민권자로 지난 94년부터 아주대 의대에 재직해온 최병일(58) 교수.
그는 여생을 고국에서 의료봉사하며 살 요량으로 귀국했지만, 미국 국적은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유는 한국 사회의 국적에 대한 편견이
싫어서다. "국적을 바꾼 사람을 「민족배반자」처럼 생각하는 사회풍토에
비애를 느꼈습니다."

고급두뇌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3D 산업'은 오래 전부터 노동력 부족을
호소해왔지만 정부는 불법체류 문제를 내세워 규제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다.
그나마 연수생 명목으로 받아들인 동남아 근로자들은 한국인 악덕 기업주의
학대와 저임금에 시달리다 결국 한국에 이를 갈며 떠나가고 있다.

세계는 국적 개방을 넘어 국적을 '사고 파는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국적
제도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제 더 이상 '혈통'이 아니다. 국익의 극대화일
뿐이다. 그걸 빨리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세계경쟁 대열에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