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캘리포니아주, 오레건주 등 미 서해안 지역
일본인들은 안보상 이유로 네바다 등의 집단수용소로 ?겨났다. 땀흘려
일궈놓은 재산도 많이 잃었다. 같은 적국이었지만 이탈리아계나 독일계
미국인은 그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인종 차별 행위다.
이 일을 소재로 이미 앨런 파카가 '컴 투 파라다이스'를 만들었고,
이제 '삼나무에 내리는 눈'(Snow Falling On Cedarsㆍ19일 개봉)이 나왔다.
첫 상업 장편 '샤인'으로 이름을 알린 스콧 힉스 감독은 시종 가라앉은
음울한 겨울 빛깔 속에 이야기를 풀어낸다. '컴 투…'의 정치적 색깔에
비해 '삼나무…'는 구체적 인간들의 꿈과 욕망, 좌절을 통해 정의, 도덕같은
추상적 개념에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간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얼마나 많은 무구한 삶을 예상치 않던 강 기슭에
부려놓는지. 시애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태평양 연안 어촌, 피에드라에서
일본계 가츠에가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땅 문제로 갈등이 있던 어릴적
친구를 풍랑 속 배에서 살해했다는 혐의다.
법정 드라머 형식으로, 수많은 회고 장면을 통해 인물과 사건을 이야기하는
영화틀은 낯설지 않다. 노 변호사역의 맥스 폰 시도가 목소리 높이지 않고
실마리를 던져가고, 정의와 옛 사랑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
기자 역 이산 호크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역을 무난하게 연기한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한국계 릭윤(가츠에역)은 분노와 침묵의 벽에 갇힌 고정된
표정이라 아쉽다. "잽(일본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어. 늘 화난 표정이란말야"고 말하는 극중 인물 말처럼.
감독은 자연 풍광을 주인공의 하나로 여긴다. 삼나무는 어린 시절의 순수와
열정, 정의를 상징하는 배우다. 주인공들은 삼나무 숲 지역을 통과하며 어른이
되고 거짓을 씻는다. 화면은 시종 청회색으로 물들어있다. 밝은 햇빛과 삼나무의
초록은 오직 어린 시절 추억 때만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자연과 빛의 상징은
너무 공식적이고 납작하다. 착한 사람, 추하도록 욕심 사나운 인종주의자,
고뇌하는 진보적 지식인 식으로 나뉘어진 인물도 도식적이라,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