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멸망으로 인도할 것인가? 과학-기술, 경제의
발달 등으로 세속화가 가속화되는 한편으로 기성 종교의 쇠퇴, 영성 운동의
대두, 동양 종교의 서양 유입 등 새로운 흐름들이 종교계를 강타하고 있다.

또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등 20세기에 인류의 삶을 뒤흔들었던 이념들이
차례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후 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종교가 대신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이자 종교학자로 종교간

대화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는 한스 큉 독일 튀빙겐대명예교수(72)를 지난

10일 튀빙겐의 「세계윤리 연구소」에서 만나 21세기의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 편집자 )

서구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급격한 세속화와 종교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교회 출석률은 매우 낮고 성직자 지망생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원인은 무엇입니까. 21세기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까요?

"세속화는 서양 사회의 오랜 발전이 가져온 필연적 산물입니다. 산업화,
민주주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 등으로 사람들은 오랫동안 당연한 존재로
여겨왔던 신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막스 베버는
일찍이 이런 현상을 '세계의 각성'이라고 불렀지요. 더욱이 20세기의 마지막
10년간은 경제적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경제화'가 진행되는 바람에 종교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화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종교의 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에 나는 반대합니다.
인류의 이성 발달에 따라 종교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등의 예언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우리는
'제도적 종교'와 '종교성'을 구별해야 합니다. 서구 사회에서 기성 종교들이
세속화와 근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쇠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와 종교적 주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욱이
종교적 자유가 확대되고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종교의
폭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습니다.

성직자의 부족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직업적 성직자 지망생은
줄어들고 있지만 신학적으로 잘 훈련된 많은 평신도들이 더 큰 종교적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종교성'은 기성 종교 안에서는 '영성 운동', 밖에서는 개인의
초월을 추구하는 '뉴 에이지'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입니다. 이런 새로운
종교적 흐름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그런 새로운 흐름들이 매력을 갖는 것은 종교의 교의적, 의식적 측면보다
직접적인 종교적 체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내적 힘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명상, 성령
강림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체험을 통해 이를 이루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종교성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그들이 반사회적 행동만 보이지 않는다면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편으로는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하고
폐쇄적인 소규모 집단이 됨으로써 종교의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성 종교들이 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들을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사회의 최근 두드러진 종교현상은 불교, 도교, 힌두교 등 동양 종교의
대두입니다. 아마도 그 인기의 비결은 당신이 말하는 '종교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인기는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합니까?

"서양인들의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은 한편으로는 점점 세속화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종교적 지향점을 잡기가 어려운 데 따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
사회를 지배해 온 그리스도교 교회의 제도와 독단주의에 대한 반발입니다. 동양
종교들은 개인의 정신적 추구에 대해 좀더 관대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달라이 라마 같은 호소력 있는 종교지도자의 역할도 크지요.

그러나 나는 동양 종교들이 강한 사회적, 정치적 요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동양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측면들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21세기에는
동-서양의 종교가 상대 지역에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들어 종교간 대화가 세계 종교계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신은 종교간 대화에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종교간 대화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21세기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학생 시절 '비그리스도교인에게 구원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전형적인 신학적 질문에서 다른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여행을 통해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종교의 여러
형태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종교간 대화가 단순한 학문적 관심사가
아니라 그것 없이는 국가와 민족간의 평화와 공존이 불가능한 정치적 문제라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종교간 공존을 위해서는 국제적 종교기구와 정치가, 외교관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중요성 입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진정한
종교간 평화는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 정치학자 헌팅턴은 공산주의의 붕괴에 따라 종교가 이념을 대체할
것이고, 21세기의 국제 분쟁은 종교 때문에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헌팅턴이 국제정치 분석에 종교를 주요 요소로 도입한 것은 좋은 시각이지만
그가 종교간 갈등과 대립을 필연적인 것으로 본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중동지역, 발칸반도, 인도네시아처럼 종교간 대화와 이해의 부족으로 커다란
분쟁과 전쟁이 계속되는 곳이 많지만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필리핀,
북아일랜드처럼 여러 종교와 종파가 연합해서 분규를 종식시키고 민주국가를
건설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주목하여 그 가능성을
더욱 확대시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이지만 교황청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바티칸과 불편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 불편을 무릅쓰면서까지 교황청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황청은 아직도 중세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타협을 해야
했고 성직자의 독신 문제, 산아제한, 이혼 등 일부 중요한 논점들은 다루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교황권의 문제입니다. 나는 교황권이 가톨릭
교회 전체를 통치하는 제국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교회의 단결과 봉사를
도와주는 가톨릭 연방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부들의 독신
문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독신을 고집한다면 주교들은 머지 않아
사제가 없이 일해야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인 여성들의 사제 서품은
신부들의 결혼이 허용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나는 다음 교황이
이런 가톨릭 교회의 문제들을 정면에서 다루는 제3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인류 역사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며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것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특히 종교의 측면에서 그런 변화가 21세기에 어떻게 나타날
것이라고 보십니까?

"인류는 이제 근대성의 성취가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본격적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이성의 산물인 과학, 기술, 산업화, 국민국가 등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 수단이 아니란 것이 판명된 것이지요. 사실 이런
변화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시작됐지만 전체주의 대두, 공산주의
등장에 따른 이념 대립으로 한동안 문제의 본질이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변화의 실체는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인류는
진정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는 이제 남녀의 동반관계 수립, 환경문제에의
대처, 세계 평화의 촉진 등 인류의 새로운 과제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이런 인류 사회의 변화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요소가 아니며 변화의 주체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이미
많은 지역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역설하는 '세계 윤리'도 그런 인류 역사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세계 주요 종교들에 바탕하여 '세계 윤리'를 만들어내려는 당신의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이제 세계화는 아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가피한 흐름이 됐습니다.
나는 진정한 세계화는 경제, 금융, 기술, 정치적 차원 만이 아니라 윤리적
측면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계 질서는 단순히 외교적 수단이나 군사적 개입,
인도적 원조, 국제법 등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류가 함께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의 확립이 필요합니다.

이런 세계 윤리는 인류 공통의 이상과 가치관, 기준, 세계에 대한 강한
책임감에 바탕해야 하며 그런 면에서 가장 적합한 것이 종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등 주요 종교들의 가르침에서
비폭력과 생명에 대한 존중, 관용과 진실성, 연대와 정의로운 경제질서,
평등과 남녀의 동반관계 등 세계 윤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 튀빙겐(독일)=이선민기자 / sm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