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은혜의 집」.

뇌성마비로 하루종일 누워 지내는 선희(15)양, 다운증후증과 자폐증을
앓고있는 상석(12)군, 척추이상으로 스스로 앉고 서지 못하는 찬양(7)군 .
60여 평의 거실을 꽉 채운 무의탁 장애인 61명은 원장 최재학(41)씨가
들어서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 어 ∼』 말을 못하는 김성윤(여·28)씨는 최씨에게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상석이는 달려와 최씨의 다리를 감싸 안았다.

『대부분이 신체-정신 장애를 같이 앓는 중증 환자입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10% 미만이고 절반 정도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죠.』

91년부터 「은혜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씨는 82년 청량리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 프레스에 왼쪽 손을 잃었다. 퇴원 후 30여 군데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 결국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한 손에 200여 부의 신문을 받아 든 첫 날, 그는 눈물을 흘렸다.
장애인이라는 피해의식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던 84년 어느 날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그는 뇌성마비 환자들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 계획표를 새로 짰다.

『내가 처한 장애라는 것이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깨달았죠.』

그 후 장애아를 돌보는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 88년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하며 만난 박인숙
(40)씨와 결혼을 했다.

본격적으로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려고 최씨는 91년 아내의 친정이 있는
경기 양평으로 내려왔다. 5평 남짓한 창고를 개조해 중증 장애인 8명을 첫
식구로 맞이했다. 최씨는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립식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도움을 받았고,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
사는 형제들이 쌀과 농산물을 보내왔다.

식구는 금세 늘었다. 날마다 「은혜의 집」앞에는 버려진 장애인들이
발견됐고, 금방 60여 명이 됐다. 한 달 생활비는 800만∼900만원. 한 달
수입이 200만∼300만원인 최씨는 나머지 운영비를 자선 단체들의 기부금에
의지하고 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요. 단골 주유소에서는 보일러 땔 기름을 사갈 때
「돈은 언제든지 편할 때 달라」고 말합니다.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얘기가
많아요. 그러나 제가 이들의 아픔을 알아요. 죽을 때까지 이들과 함께 있을
겁니다.』

그는 올해 「은혜의 집」을 법인으로 등록해 복지시설로 가꾸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법인 계획도 쉽지 않네요. 주민들 반대가 심해요. 20여 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느꼈던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