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견제할 선의의 경쟁세력 등장해야" ##
듀크대학의 로버트 코핸(Robert Keohane)은 흔히 현대 국제정치학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석학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놓고 씨름하는 정치 현실주의(Realism)가
지배해 온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국가간의 상호작용과 번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 현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장과 공저한 「권력과 상호의존-전환기의 세계정치
(Power and Interdependence-World Politics in Transition)」라는 책은
국제정치를 권력과 힘이라는 헤게모니의 틀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과 번영으로 눈을 돌리게 한 기념비적 역작으로 꼽히곤 한다.
단 한 번도 학문 외의 세계로 외도한 적이 없는 코핸 교수는 현재 미
정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96년 모교인 하버드대학 교수에서
부인(내널 코핸)이 총장으로 있는 듀크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학계에
적잖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다음은 코핸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예상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전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두 가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일종의 선과 악의 시나리오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미국과 서구,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과 한국 같은
나라들이 안정되고 경제적 번영을 지탱해줄 수 있는 동맹-협력관계를
지속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 같은 나라가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국제기구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협력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세계는 기술력의 발전을 상호 교환하는
상황이다. 악몽의 시나리오는 미국과 유럽이 내부적 갈등에 휩싸이고
중국이 외부 환경을 적대적으로 인식해 군사력의 사용에 더욱 의지하려
할 경우 이것이 일본의 대응으로 발전하는 상황이다. 「미국 대 중국」의
대결이 자칫하면 3차대전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위험이 있다. 또 다른
악몽은 미국이 세계적 리더십 발휘를 포기하면서 1930년대의 고립주의적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 20세기는 분명 명실공히 세계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지배적 우위 속에
막을 내렸다. 이 같은 미국의 지배는 얼마나 지속될 것 같은가.
『제국(Empire)이라는 말은 미국을 표현하는 데 적절치 않다. 역사상의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 확장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국(Great Power)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미국의 지위는 기술적 우위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세계 역사에서 현재의 미국은 어디쯤 위치한다고 보는가.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는다면 19세기 영국을 꼽고 싶다. 대략
1830년에서 경제적 하락이 시작된 1880년까지 50년 동안의 영국을 20세기
후반기의 미국에 비유하고 싶다. 물론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첫 산업혁명을 이룩한 영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였다.
영국도 미국처럼 대양국가로, 단지 지정학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하고
머물기보다는 해외로 뻗어가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또
자유롭고 동시대의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민주적 국가라는 점도 유사하다.
또 대국의 힘을 다른 나라들과의 파트너십을 창출해내려는 형태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해 보인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는 영국에 의한 세계지배인 「팍스 브리태니카
(Pax Britannica)」를 대체한 것이다. 로마나 몽골은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지배를 강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미국과는 다르다고 본다.
현재 미국의 시스템이 훨씬 더 안정적인 것은 과거 제국들이 필연적으로
적을 만들고 다른 나라들을 강제로 편입시킨 것과 달리 덜 위협적이고
자발적이기 때문이다. 강압에 의한 지배는 소련처럼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예들을 역사 속에서 목격했다.』
-- 역사 속에서 숱한 제국들이 등장하고 명멸해갔다. 결국 미국도 똑같은
운명을 걸을 것으로 보는가.
『물론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의
주기적 순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이클을 정확하게 읽는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로마제국은 약 500년간 계속됐다. 하지만 17세기 전반기
스페인제국은 세계 최강국이었지만 50여년 만에 무너졌다. 미국이 세계
초강국으로 등장한 것을 대략 1945년 이후라고 본다면 현재까지 55년간 그
압도적 우위를 유지해왔다. 현재 미국은 정점에서 하락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80년대
미국의 산업경쟁력이 일본과 유럽 국가들에 뒤지는 현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쇠퇴를 점쳤지만 결국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는가.』
-- 미국의 저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이 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결과다. 우선 미국은
대륙국가(Continental Power)로서 대국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지구상에서
대륙이라고 부를 만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규모의 나라는 몇 안 된다. 옛
소련이나 현재의 러시아, 중국, 브라질 정도다. 대륙국가라는 것이 초강국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겠지만 필요조건은 될 만하다. 두번째로 미국이 외부의
사상(Ideas)과 이민자에 대한 개방형 사회라는 점을 꼽고 싶다. 미국은
해외의 사조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열린 사회였다. 현재의 첨단 산업
분야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세기 내내 계속된 것인데,
2차대전 이전 미국이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데 힘입은 바 크다. 결국
이 같은 과학 분야의 우위가 2차대전의 승리로 이어졌다. 외부 사조와
인물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사회가 누릴 수 없는 커다란 이점이었다. 이
점은 내가 조지프 나이 교수와 함께 주장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세번째는 미국의 정치 체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효율적이었고 경제 역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지는 못했어도 깊이는 갖추고
있었다. 미 정치 체제는 안팎의 도전에 완벽하게 대응하지는 못할지언정
대응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경제 체제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했다. 미
경제는 「창업가(Enterpreneur) 사회」라고 부를 만큼 도전으로 가득하다.
네번째 요인으로 미국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면 미국인이라는 데 대해 느끼는 일종의 사명감(Mission)
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여전히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는 기꺼이
리더십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4개 요인 중 일부를 갖춘
나라들은 있었지만 미국처럼 결합된 경우는 없었고 이런 점들이 20세기
미국을 수퍼파워로 만들었다고 본다.』
--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일방독주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소리가
적지않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지적도
있고 때론 힘에만 의존하는 건달(Bully)처럼 행동한다고도 하는데.
『미국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성향이
개인의 삶에서 진실이듯 국제정치에서도 그렇다. 완전히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지진 피해국을 돕는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볼 수 있다. 또 미국의
힘이 너무 막강해져서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상황이다. 모든 권력은 타락하게 마련이고 특히 절대적 권력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세계를 위해서도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민주적 체제를
갖춘 견제세력이 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제3차대전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미국 대 중국 대결」이라는 시나리오를 보고 싶지는
않다. 수퍼파워를 통제할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은 우리의 적국이 아닌 동맹국들이
분명한 목표를 갖고 협력관계 속에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이다.』
(* 듀르햄(노스캐롤라이나주)=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