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의 그림과 생애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음, 최승규 옮김
한명출판. 2만3000원

피터 폴 루벤스(1577~1640). 벨기에 안트워프 출신으로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을 뿐 아니라 부와 명예, 가정의 행복까지 고루 갖춰 개인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삶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 박식과 인격으로 조국과 유럽의 평화를 위한 외교활동에도 헌신했다.

야콥 부르크하르트(1818~1897).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활동한
역사가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명' '그리스 문화사'등의 저술로
정치-외교사 일변도였던 19세기 역사학계에 문화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다. 그는 또한 바젤대학에서 오랫동안 미술사를 가르칠 정도로
이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르크하르트가 250년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루벤스를 만났다. 젊은
날부터 루벤스의 작품을 사랑했던 부르크하르트는 그가 감상한 루벤스
그림들에 대한 평을 틈틈히 정리하여 두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구서가
아니기에 본인은 출판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다음해 제자들에 의해
'루벤스의 회상'이란 이름으로 간행됐다.

이 책은 연대기적인 루벤스 평전은 아니다. 그보다는 루벤스 작품을
중심으로 79편의 그림을 직접 감상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를 판화,
누드, 종교화, 고전신화, 역사적 주제, 초상화, 동물화, 풍경화 등
주제별로 분석함으로써 루벤스 미술의 특징을 밝히려고 한다.

루벤스는 당시 미술의 주된 전통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23세 때
당대 미술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로 가서 8년간 머물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는 이곳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티치아노, 카라바지오 등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단순한 모작 화가는 아니었다. 그림의 배경과
등장 인물-동물을 과감하게 바꿈으로써 그는 때로 거장들이 어떻게
창작했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같은 독창성은 그가 훗날
궁정 초상화가로 출발해 유럽 주요 성당들의 제단화와 천장화를 독점하는
종교화가로 활약하고, 만년에는 플랑드르 교외의 풍경과 자연생활을
그리는 풍경화가로 변신하는 전과정에 드러난다.

부르크하르트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도중에도 작품 의뢰를 받는 데
열심일 정도로 성실하고 모범적이었던 루벤스의 삶을 높이 평가한다.
미술가로서 드문 경우였던 루벤스의 행운은 곧 동시대인과 후대인들의
행운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