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새 천년 사회의 중핵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세기 전쯤 군사적 목적에서 탄생한 디지털 개념은
지난 20년 사이 전세계를 완전히 점령했다. 빅뱅의 파장은 군사-
학문적 영역을 넘어 문화로 몰아쳤다. 디지털기술이 창조한
기상천외한 영상 앞에서 관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디지털문화는
또한 컴퓨터 게임을 통해 놀이 기구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사용자들은
디지털문화의 단순한 향수자이길 그치고, 참여자로 서서히 변모했다.
그리고 통신망과 인터넷은 참여자들을 마침내 생산자로 탈바꿈시켰다.
이 우화의 기적은 사이버공간의 세가지 특성이 포개져서 실현됐다.
우선, 가상공간은 사람들을 완벽하게 평준화한다. 참여자들에겐
사회적 신분이나 인격 수준이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활동량과
활동상만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익명이 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가장 개성적인 개인이 된다. 모두가 한없이 자유로운 활동 주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래 작가와 독자(관객) 사이 차별은 사라진다.
'문화인'으로 등록되는 번거로운 절차가 없이 누구나 자기 상상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다음, 디지털 공간에서 모든 것은 정보로서
존재한다. 정보란 가공되지 않은 지식이다. 가상공간 참여자들에게
정보는 아주 탐스런 먹이다. 그들은 이 먹이를 씹고 삼키고 소화시켜
저마다 독특한 가공물로 다시 가상공간에 올린다. 그렇게 올라 온
지식과 문화는 다른 참여자에게는 다시 가공될 정보로 주어진다.
끝없는 정보 가공의 순환체계, 즉 문화의 영구 확대 재생산체제가
수립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공간은 못 만들 게 없는 꿈 공장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무한 상상 무대다. 이것이 디지털 예찬자들이 찬미하는 새로운
천년 사회의 청사진이다. 그러나, 이 푸른 초원 옆에는 어두컴컴한 공황의
숲이 웅크리고 있다. 천차만별의 문화가 범람하면서 질적 기준이
무의미해진다. 디지털 공간에서 생산되는 문화의 95%는 쓰레기다. 쓰레기
문화는 폭력성을 동반한다. 익명 공간은 책임을 묻지 못한다. 욕설이
난무하고 감정을 분뇨처럼 쏟아내는 조포한 표현이 창궐한다. 상업성이라는
기준만이 남는다. 저열한 문화상품들이 `새로움'과 `환상'의 표찰을 달고
말초적 욕구를 어르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무한 생산체제엔 후진 장치가 없다. 새로운 표현은
끝없이 개발되지만, 되돌아보는 반성적 작업은 끼여들 자리가 없다.
반성의 부재는 디지털공간 주체들을 한없는 생산의 미궁 속에 집어넣는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새로움의 허기에 사로잡혀 돌다보면, 개성은 사라진다.
모든 문화는 '나의 표현'이 아니라 카피일 뿐이다. 무서운 현상 중 하나는
이 '문화 해방구'가 실은 상위 생산기제에 속박돼 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공간의 문화적 표현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장치'에 기대서만 가능하다.
판타지소설을 올리려면 워드프로세서와 모뎀과 통신망 등록비가 필요하다.
DDR에 맞춰 춤을 추려면 발판과 소프트웨어를 사야 한다. 그 뿐인가. 오직
발을 좌우상하로만 놀려야 한다. 동북방향이나 서남방향은 안 된다. 이게
디지털 문화다. 여기에 자유가 있는가. 디지털 문화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뉜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미래의 문화가 디지털 칩 안에서
노닐 것이라는 점이다. 한판 잘 놀 수도, 그저 놀아날 수도 있다. 어떻게
놀까를 21세기 새 종족들은 심각히 고민할 것이다.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