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독을 발라 화살을 날리는 데에 송능한 감독만한 재능도 없을 것이다.
`넘버 3'에 이은 두번째 작품 `세기말'은 올 하반기 문제작으로 꼽을 만하다.
모두가 어떻게 하면 때깔좋은 장르영화를 만들까 고민하는 충무로에서, 그는
`서울, 1999년 겨울'의 벽화 그리기에 달려들었다. 데뷔작으로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성과를 함께 거둔 유망 감독이 두번째 작품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제 목소리를 내기란 예삿일이 아니다.
--흥행이 순조롭지 않은 것 같다.
현실을 거울로 되비쳐내는 영화를 보기엔 젊은이들이 버거울 것이다. 작품
내적으로 할만큼 했기에 손해 보지않을 정도라면 만족한다.
--깊은 환멸과 분노에 놀랐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잘못 굴러가고있는 자본주의 시스팀이다. 사례들은 내 경험이거나 내 친구
얘기일 수 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자본주의는 긴장을 잃어버렸다. 자본주의
천민성이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거칠지 않았는지.
직설로도 쇼크받지않는 둔감한 시대에 캐릭터를 통해 한단계 거르는 방식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살아난 90년대 이후 오히려
현실에 무감해진 영화계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이렇게`저지르는'영화도
있어야 한다.
--평론가들을 직설적으로 공격한 부분을 놓고 논란이 있다.
영화인으로서 몸담고있는 판을 공격하는 게 옳은가 생각도 했지만 한국사회를
비판하면서 자기 터전이라고 조심스러워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오래 된 영화
동료가 비평을 권력 도구로 쓰는 데 화가 났다. 하지만 작품속 영화계 비판은
훨씬 보편적이다. 영화판 역시 천민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작에 비해 주제의식이랄까, 감독 생각이 훨씬 더 명확하다.
경험이 없었던 전작과 달리, 촬영중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캐스팅에서`넘버 3'는 충무로에 진입하기 위한 타협이 분명 있었다.
`세기말'은 그런 데서 자유로웠고, 내 의도가 더 많이 살아있다.
--알트먼 영화처럼 이야기를 분산시킨 구조는 어떤 의도에선가.
세상은 몇몇 힘있는 주인공이 좌우하지만, `대안적 꿈꾸기'인 영화에서만큼은
그렇지않기를 바랐다. 스타 한두명이 끌고가는 독재적 방식이 싫다. 가장 작은
사람에게도 소중한 삶이 있다. 알트먼과 타란티노에게서도 힌트를 얻었다.
--유독 소령(이재은)이라는 캐릭터에 진한 애정이 보인다.
소령은 내 자신이고 천민부르주아 천은 시스팀이다. 소령에게서 기시감같은
감정적 동일시를 느꼈다. 천이 소령을 돈으로 사서 관계하는 대목은 내 과거
굴욕을 상징하는 것 같아 스스로 보아내기 힘들었다.
--출연진 연기가 참 좋다.
좋은 배우들을 모아 연극 한편 올리는 기분이었다. 모두들 호연했지만, 가장
감탄스러운 이는 이호재였다. 장면마다 힘과 기가 느껴졌다. 이재은 연기는
`발견'이랄 만하다.
--앞으로 계획은.
일단 좀 쉬겠다. 이번 시도로 다음 작품이 힘겨운 싸움이 되리라는 걸 잘
알고있다. 지나온 이야기는 두편으로 충분히 다뤘으니, 다음 작품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겠다.
(* 이동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