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장」은 웬만한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지만 한국인의 의식과 행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조어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직장상사나 안면있는
인사의 경조사에 찾아가 눈을 맞춰야 마음이 놓이는 게 우리네 습성이다.
하물며 상대가 권력의 실세라면 만사 제치고 눈도장 찍으러 몰려드는 것이
작금의 세태다.

국민회의 권노갑 고문의 아들 결혼식에 3000여명의 하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청첩장도 내지 않고 접수대와 방명록도 비치하지 않았는데도
알음알음 찾아온 하객이 수천명에 달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문제는 이들이
혼주와 악수를 나누며 눈도장을 찍느라고 대로변까지 장사진을 치는 바람에
인근 교통이 혼잡을 이뤘다는 점이다. 신랑 신부 축하는 뒷전이고 자신의
존재확인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두달 전 같은 당 사무총장이 가족-친지만 초청해 조용히 아들 혼사를
치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권 고문은 자신의 행보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음을 모를 리 없다. 지난 2월 그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과정에
입학한다고 알려지자 지원자가 폭주했다는 것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본인은 조신하게 처신해도 권력 주변에는 「꾼」들이 몰리는 세태를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혼사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좀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제 발로 찾아온 하객들을 어쩌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인이라면
옷로비 사건 등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바로 읽어야 했다. 도심 호텔에서
정오에 혼사를 치르는 것 자체가 민폐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
소문난 잔칫상이 안 되도록 조심했더라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0년에는 결혼문화부터 달라져야 한다. 청첩장이 고지서가 되어 내키지
않는데도 눈도장 찍으러 가는 구태는 벗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가족 친지 중심의 결혼식이 정착되어야 알음알음 세태도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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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면 봉

-- 대검, 박주선 전 청와대 비서관과 사직동팀원들 대질조사. 꼭
험한 꼴을 봐야 하나?

-- 여야, 선거사범 공소시효 6개월서 3개월로 단축키로. 잠시 욕먹고
4년 간 편하게 살자?

-- 미국무부, 연말연시 해외 미국인들에 테러 경계령. 미국인 있는
곳에 '평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