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전훈(34)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같다. 러시아
유학파답게 사실주의 연극에 몰두하면서도 록 뮤지컬에 퍼포먼스까지
종횡무진한다. 일본 순정만화 `유리가면'까지 각색해 무대에 올릴
정도로 거리낌 없다.
97년 첫 연출을 맡았던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는 지난 8월 세계
유수 연극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발에서 전석 매진으로 현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물놀이 가락에 이야기를 실은 `난타'는
세계진출을 노리는 `문화상품'으로 훌쩍 성장했다.
지난 11월12일 호암아트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록 햄릿'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헤비메탈과 셰익스피어를 결합한 `록햄릿'은
특히 서구인들에게 신선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로이터TV와 CNN까지
나서 작지않게 보도했다. 특히 햄릿을 호위하는 수도사 세명을 무술
뛰어난 한국 무도승으로 묘사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고들 했다.
`록 햄릿'은 중고교시절 록밴드 보컬까지 했을만큼 헤비메탈에
심취했던 게 한몫했다. `쉬리' `아름다운 시절'로 영화음악에서
1류로 꼽히는 이동준과 죽이 맞았다. 만화잡지 5권을 죄 구독했던
열성은 `유리가면' 극화로 이어졌다. 영화에서 주로 쓰는 스톱
모션과 슬로 모션까지 선보인 `유리가면'은 젊은 감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드라마를 엮어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진 생각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고 한다.
`록 햄릿'이 매니아 취향이라는 비아냥 도 듣지만 아랑곳않는다.
"올 사람만 오라. 세계로 나가 승부하겠다"고 응수한다. 분야를
넘나들며 재기를 뿜어대는 모습이 젊은 날 `문화게릴라' 이윤택을
보는 것같다.
활동 주무대는 93년 러시아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만든 극단
`떼아뜨르 노리'. "러시아 사실주의를 수용, 한국적 신사실주의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나섰다. 97년 `결혼전야'를 시작으로 국내
활동에 들어간 `떼아뜨르 노리'는 작년 체홉 작품을 따로 모아
페스티벌까지 열며 활발하게 움직인다. 대표 겸 연출을 맡은 그는
"가식적 연기를 걷어내고 일상을 그대로 무대에 옮긴 것 같은 사실적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만큼이나 용모도 별나다. 머리는 빨간 색으로
물들였고, 한쪽 귀엔 귀고리를 달았다. 며칠전엔 패션몰 밀리오레에서
왼쪽 눈썹까지 뚫었다. `아령' 모양 눈썹걸이까지 가관이다. 그런
차림으로 서울예대에 강의까지 나간다. 사연을 물었더니 "그냥 뭐,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대수롭잖게 말한다. 러시아에선 치렁치렁한
머리를 뒤로 묶고, 신발도 짝짝이로 신고 다녔단다. 그래도 96년말
귀국해선 머리를 깎고 단정하게 다녔다. "유학생 티낸다는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새 천년에 풀어볼 일
욕심이 더 많다. 우선 내년 6월 무대에 올릴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렌트' 연출자로 일찌감치 지목됐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
미국으로 끌어들인 `렌트'는 에이즈와 마약으로 고민하는 현대 미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려, 폭발적 호응을 받는 록 뮤지컬이다.
여기에 `무협 뮤지컬' 얘기까지 꺼낸다. "`난타'에서 한국적
리듬의 세계화를 시도하고, `록 햄릿'으로 서양 고전과 동양 정서
결합을 노렸습니다. 국악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와 함께 무사들이
공중을 날며 펼치는 활극에 사랑을 넣으면…." 이동준과 함께
작업하기로 약속까지 해뒀단다.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얘기를 빈 말로
넘기기에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다.
※전훈
▷65년생
▷동국대 연극영화과, 러시아 쉐프킨대 연기실기석사(MFA)
▷'떼아뜨르 노리' 대표
▷연출 대표작: `난타' `록햄릿' `결혼전야' `유리가면' `청혼'
`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