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업(48)의 시를 읽으려면, 지리·토속어 공부가 필요하다.
벽송사, 쑥밭재, 광점동, 사량도, 신밭골, 달빛소리재, 무제치기…,
족두리풀, 곰취싹, 얼레지, 마가목, 먼지잼, 정향목, 당세기,
노구솥…. 다리품으로 익히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책품으로라도
아쉬운대로다.

그는 국내외 많은 암-빙벽을 등반하고 개척한 산악인이며, 6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이번에 나온 `자작 숲 움 틀 무렵'(명상 출간)도

지리산 천왕봉의 북동쪽에 위치한 치밭목과 그 근동을 주제로 연작시를

모은 것이다. 눈을 감고 암송하면 시인은 독자를 무등 태운다. 그렇게

지리산을 넘지만 힘들기는 커녕 시인도 신바람이다. 그의 시에는

신밭골의 약촛꾼인 민씨(달밤)도 나오고, 외팔이 각혈꾼 하씨(늦가을비)도

나온다. 이들은 실존 인물들이고, 신경림 시인은 그들에게서 `아픈 역사의

현장'을 읽어내 준다.

권경업의 시는 전체적으로 슬프다. 산도, 울음을 통곡하지는 않지만,
눈시울이 그렁그렁해 있다. 저녁산, 수묵빛. 그 안에 잠기는 범종소리는
시인의 영혼이고(저녁산), 풀벌레는 제 명을 깎아서 운다(근심거리).
김삿갓이 시를 강물에 띄웠다면, 권경업의 `길잃은 시는 서천으로 날아가
버린다(기러기 중에서)'.

시인은 발목 부르튼 산행에서 외쳐 부르고 싶다. 어머니! 살진
산가슴은 그 메아리까지 품어준다. 오냐, 아가, 예까지 왔구나.
생솔가지를 태워본 적이 없는 아스팔트의 자식들은 연기 사이로
피어오르는 솔빛이 암호문자일 뿐이다(산행).

산악인의 정분은 아지랭이꽃 처럼 허망할 때가 많다. 빨던 사탕도 꺼내
줄 듯한 건 언젠데…, 사잇 서방 붙어갈 첩실년 같은 봄…(싫어, 봄이 싫어,
보리밭).

독자들은 울멍울멍 시집을 넘기다, 중반 쯤에 표제작 `자작 숲 움틀
무렵'을 맞닥뜨리고, 쿡, 웃음을 토한다. 조잘조잘/ 귀간지러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다(자작 숲 움틀 무렵 전문). 그는 때로 시와 시조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악의 시심에 율격을 매기기도 한다(장당골 추색).

소주병 비어가는 만큼 들어와 찰랑이는 솔바람 소리! 시인은 그 밤엔
술잔에 솔바람 소리를 담아서 먼저 간 산벗의 넋을 마신다(가을밤, 상강).

산인을 기다리는 여인도 하염없기는 마찬가지다. 몸은 춥고, 마음만
붉다(가을비).

그러한 설움들은 시인의 설움이고, 산벗의 설움이기도 했고, 님의
설움이었으며, 종내 이 땅의 설움으로 꽃향기를 터뜨린다(들국화).

시집을 내면 휴식은 끝이다. 다시 배낭을 꾸려야 한다. 그리고 시인은
제몸에 겨울강 처럼 칼금을 그으며 쩡쩡 울 것이다(겨울강). 인간들의
교만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산. 그 산이 전하는 간절한 속내를 대필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