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34)=시간을 상대보다 덜 쓰고, 혹은 제한 시간을
남긴 채 패하는 기사는 흔히 규탄의 대상이 된다. 이 바둑의 사용시간은
백이 2시간 41분, 흑은 고작 2시간 14분. 결과는 백의 완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 바둑의 경우는 히코사카를 나무라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세가 워낙
기울어 버리면 남는 시간으로도 어쩔 수 없는 법. 수십집을 지고도
초읽기 속에 마지막 반패 싸움까지 하는 부류들 보다는 담백한 기질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124까지 선수 후 125로 밀어 128을 강요, 다시 선수를 뽑아 129에
뛰었다. 여기서도 백은 130으로 하나 찌른 뒤 점잖게 132로 잇는다.
전혀 무리할 생각이 없다는 태도. 무릇 전투란 이쪽 약점이 사라지면
상대 약점이 더욱 뚜렷이 부각되게 마련이다. 132때가 그런 상황으로,
133을 게을리했다간 참고도 백 1의 급소로 좌중앙 흑 대마를 끊어가는
수단이 있다.
하지만 뒤이은 134가 또한 엄청나게 큰 곳. 히코사카는 계시기를
한번 흘낏 보더니 기록자를 향해 패배의 사인을 보낸다. '가'로
이어가면 아직 항복하기엔 이르지 않을까. 그 의문은 총보에서
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