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들에게 어떤 데드라인(deadline) 을 설정하는 것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나가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뉴욕 신문기자들의
24시간을 담은 페이퍼 나, 독극물에 중독돼 24시간뒤 죽게될 남자의 이야기 죽음의 카운트다운 이 긴박한 것도 데드라인을
설치해놓은 덕분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한 신작 트루 크라임(True Crime) 은 앞 두영화의 모티브를 엮어놓은 것 같다. 오클랜드 트리뷴 기자
스티브는 사고로 죽은 동료의 일을 떠맡는다. 젊은 임산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흑인 프랭크에 대해 기사를 쓰는
일이다. 스티브의 예민한 코 는 프랭크가 무죄임을 거의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 불과 12시간 뒤면 프랭크는
처형된다.

이런 식 데드라인 스토리라 하면 흔히 서스펜스나 긴장, 속도감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스트우드가 어떤 영화감독인가.
스타일의 수사학을 비켜가면서, 뚝심있고 정직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감독이 아니던가.

과연 이스트우드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페이스(pace)는 집중적이라기보다 분산적이고 산만해 보이기 짝이 없다. 고작 20분 말미를
이용하는 또 다른 데드라인 영화 롤라 런 의 MTV식 리듬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감독 이스트우드의 어슬렁거리는듯한
걸음. 전작 미드나잇 가든 에 이어, 평자들은 감독의 직무 유기 라고 탓했다.

하지만 주류 영화와 차별화되는 느린 리듬, 그것은 이스트우드가 노년의 지혜로 채득해낸 자기만의 고집이자 영화적 방법론임에
틀림없다. 그것 덕에 주인공 스티브를 비롯한 캐릭터들은 우리 곁으로 한발짝 더 다가온다. 이를테면 그 반항적인 플레이보이도
고뇌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 그 둔중한 리듬은 영화 속에 인종차별이나 가족문제들을 빼곡히 채워넣을 수 있는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물론 이스트우드의 관조적 시선 속에 안이한 해답은 없다. 그의 손길은 하마터면 스릴러에 그쳤을 이야기를 [구원]해내기에
이른다.

(홍성남·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