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김 대통령과 국민회의의 지지율
곡선은 대체로 '경제'가 현안일 때는 상승세, '정치'가 현안일
때는 하락세를 보였다.
김 대통령의 지지율은 IMF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을 쏟던 집권 초기
70%를 상회했으나 98년 7월 14% 가량 급락하며 50%대로 떨어졌고, 이
추세는 98년 10월까지 이어졌다. 98년 6월 말 시작된 사정정국은
‘경성 리스트’, ‘청구 리스트’, ‘기아 리스트’ 같은 말들을
낳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여권 영입도 이뤄져 여소야대(여소야대)로
출발했던 의석 분포가 9월 초 여대야소로 역전됐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지지율은 98년 말부터 반등하기 시작, 99년
1월 60%선을 회복했다. 여권은 98년 11월부터 경제개혁 등에 다시
고삐를 죄며 정국의 관심을 경제 분야로 돌려놓았다. IMF 1주년을
맞으며 대부분의 거시 지표들이 현저한 회복세를 보였으며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호전됐다.
그러다 99년 1월 중순 터져 나온 검찰의 항명파동과, 교원 정년
단축, 국민 연금 등을 둘러싼 당-정간의 혼선이 나타나면서 99년 4월
김 대통령의 지지율은 55.9%로 연초보다 7%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5월24일 개각에서의 김태정 법무- 손숙 환경장관의 발탁을 놓고
'국민을 무시한 인선'이라는 반발 여론이 만만치 않았고, 곧 이어
터진 '옷 로비 파동'은 여권을 곤혹스럽게 했고, 이때 김 대통령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