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테헤란로 뒷골목서 길을 잃었습니다. 밀레니엄 양식의 번듯한 고층
건물 사이에 꿈같이 퇴락한 채 버려져 있는 뜰을 보았어요. 잠깐 지켜보고
섰는 사이에도 늙은 나무들이 낙엽을 뚝뚝 떨어뜨리더군요. 그것은 어쩐지
여느 해 낙엽과 달리 특별히 비장해 보였습니다.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찢어지게 우는
겁니다. 그것이 20세기의 폐막 사이렌일 리는 없겠지만, 순간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내게 물었어요.
왜 그렇게 놀라는 거냐고, 이대로 끝내서는 안될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안네,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도 될까요. 지금은 당신이 태어났던, 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죽여 살았던, 그리고 죽었던, 그 죄많은 20세기의 마지막
겨울입니다. 가려움증 같은 막막한 불안에 뒤척이면서 당신의 웃음과 눈물을
생각합니다. 손에 잡히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관 짝
만한 은거지에서 가슴 봉긋해지는 사춘기를 만났던, 열다섯 티없이 맑은 소녀.
급기야 끌려가고야 만 죽음의 캠프에서, 생명처럼 의지했던 언니가 죽자마자
곧 그 뒤를 따랐던 한 유태인 소녀의 눈물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진짜 폐막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서둘러 그것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자, 나는 눈을 감습니다. 백기와도 같은 하얀 손수건을 들고 당신의 젖은
얼굴로 다가갑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숨죽인 축하 속에 열세 번째 생일 파티를
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여름날 이른 아침이었지요.
당신과 가족들은 속옷 위에 속옷을 거듭 겹쳐 입은 다음 겨울 옷까지
숨막히도록 껴입은 채 가방을 들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필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지만 가슴에 노란 별을 단 유태인은 버스를 탈 수도 없었습니다. 그
전날 오후, 아버지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강제 수용소의 호출장이 급습했지요.
당신 가족들은 미처 준비가 덜 된 은신처로 한시 바삐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했던 사무용 낡은 3층 건물 한 켠에 마련된 비밀 은신처에는 다른
가족들도 와있었지요.
건물 내 다른 방 사람들이 일하는 낮에는 속삭이듯 말하고 살금살금
걸어다닐 것 , 그들이 퇴근한 밤에는 더욱 더 조심할 것! 그래서 누가
기침만 해도 심장이 멎을 듯 놀라 쉿쉿거리고, 도둑이 든 것을 알면서도 쫓을
수 없었지요. 사람들이 너무 조용히 굴다 보니 생쥐가 사람 손가락을 깨무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당신은 그것마저 사랑하는 일기야, 하고 사랑스런
필체로 기록해두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유태인 몇십 명이 발길질 당하며 끌려갔다는 소식,
밤낮 없이 울려대는 폭격의 공포에는 대책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파랗게 질려
하룻밤에도 몇번씩 베개를 안고 울며 아버지 침대로 뛰어들거나 피난 보따리를
꾸려들고 발을 동동 굴렀지요. 건물이 불바다가 되거나 게슈타포가 들이닥치는
악몽에 시달리다 겨우 잠들려 하면, 오래 전에 다퉜던 친구 리스가 수용소의
누더기 옷을 입고 바싹 야윈 얼굴로 슬프고 비난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환각에
사로잡혀 몸부림쳐야 했지요. 저는 이 모든 것을 당신의 일기에서 읽었습니다.
온기없는 한권의 공책이 매일 밤 당신을 위로하고 즐겁게한, 유일한 대화
상대였으니, 그래서 유태인 학살의 비극을 누대에 걸쳐 고발하게 했으니,
당신이야말로 20세기 최고의 작가가 아닐까요.
나는 건강하고, 수많은 잠재적 소질과 강하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다......그러니 내가
절망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쓴 당신의 일기는 축축히 젖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안네. 당신과 가족이 온전히 피할 곳은 끝내 없었습니다. 은신처에서
두 번째 생일을 맞은 지 두 달이 못된, 마지막 일기를 쓰고 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갑자기 건물 아래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지요. 은신처를
돌보는 사무실 직원을 총부리로 밀어붙이며 나치당원 다섯 명이 쳐들어온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머리에 손을 올리고 벽을 향해 줄줄이 돌아서는 것으로, 2년간의 지루한
악몽은 간단히 끝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흩어졌지요. 친구같고 엄마같았던,
언니와 손을 꼭 잡고 끌려간 유태인 수용소. 당신이 어떤 소녀라는 것을
알았다면, `만약 신이 나를 오래 살게 해주신다면 세계와 인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일기장 곳곳에 기도하고 간구해온 소녀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당신을 놓아주었을까요? 아우슈비츠로,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끌고 다니다
마침내는 티푸스에 걸린 채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을까요? 아아,
어쩌자고 당신은 수용소가 해방되기 직전에 그렇게 어이없이 병균에 삶을
내주고 말았습니까?
안네, 지금도 어디선가 또 비극에 희생된 이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겠지요?
인간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존재니까요. 그래도 나는 꿇어앉은 무릎이
아프도록 당신의 젖은 얼굴을 닦고 또 닦으면서, 세기말의 사이렌이 울리길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세기엔 이처럼 눈물 흘릴 일이 없기를 기원하면서요.
(시인).
■안네 프랑크 연보
- 본명 안넬리스 마리 프랑크
- 1929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업가인 오토 프랑크의 두 딸 중
막내로 태어남.
- 1930년대 후반 나치 압박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텔담으로 전 가족이
옮김
- 1942년 7월 암스텔담 프린젠크라프트 263번지, 오토의 식료품 창고
은신처로 들어감. 이때부터 빨강과 초록 표지, 분홍과 파랑 종이의
일기장에 '사랑하는 일기야'로 시작되는 일기쓰기 시작.
- 1944년 8월 2년간의 은신 끝에 주변의 밀고로 비밀경찰 칼 조셉
실버바우어가 이끄는 체포팀에 온 가족이 체포 당함. 일기장은
은신처에 남김.
- 1945년 3월 독일 하노버 근교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티푸스로
사망. 어머니와 언니 마고가 안네에 앞서 사망하자 극도의 피로와
절망에서 결국 헤어나지 못함.
- 1945년 4월 연합군 독일 점령. 아버지 오토 프랑크만 홀로 살아남음.
오토의 비서였던 미엡 기스가 그동안 보관했던 안네의 일기장을 건네줌.
- 1947년 오토 프랑크가 '어린 소녀의 일기'란 제목으로 출간.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정말 사람들 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믿는다"고 쓴 일기는 이후 50개 나라에서 2500만부가 팔리며 큰
감동을 던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