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장서 지혜가 꽃핀다"… 사막에 온몸 불살라 ##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금세기의 가장 철저한 도전자, 사막의 전쟁터에서
고통을 통해 지혜의 완성을 추구했던 도전 정신의 구도자였다.

20세기는 조직사회 속의 순응주의를 만연시키면서도 미지와 불가능에
대한 결연한 도전을 창조해왔다. 인간의 물리적 한계에 대한 도전, 심리적
한계에 대한 도전, 내면의 신성을 향한 도전. 전진과 향상을 가로막는 온갖
역경을 넘어서는 파란만장한 휴먼 드라머들이 지구 곳곳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는 현대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반드시 그들이
아니라도 누군가 해냈을 수 있다. 그러나 로렌스는 세번째 범주의 도전을
감행한 희귀한 예이다. 로렌스가 한 일은 그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는 독창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허용한 고귀함은 어디까지인가. 인간은 자신의 육체적인
나약함으로부터 정신과 의지력을 어디까지 고양시킬 수 있는가. 젊은 날의
로렌스는 이같은 의문을 품고 도보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시나이 반도의
황무지를 여행한다. 모든 인간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난 황무지만이 그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도였던 그는 사막과 황야로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색한 끝에 마침내 영국군의 지도제작을 담당하는 초급장교가
된다. 1916년 터키의 지배에 맞서 아랍 부족들의 봉기가 일어나자 그는
홀로 이 반란에 뛰어든다. 그리고 아랍 부족들을 이끌고 2년여의 전쟁
끝에 막강한 터키의 대군을 격파하고 아라비아 전 지역을 점령한다.

그러나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행동의 드라마는 한 인간이 추구했던
삶의 궁극적인 의문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전쟁
영웅도, 영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도 아니다. 그는 일체의 척도를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 자기만의 강렬한 내면의 빛 속에 놓인
인간이었다. 그는 보다 힘든 생활, 보다 험한 고난, 보다 심한 고통을
얻기 위해 사막의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이 몸던짐(투신)에는 어떤 사회적인 의미도 없다. 오직 고통만이
지혜의 유일무이한 원천이라고 믿었던 자기만의 치열한 도전 정신이
있었을 뿐이다. 그는 아라비아의 7개 대도시를 점령했는데 그 과정은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가혹한 행군, 비참하게 살해되는 부하들,
이글거리는 태양과 한밤의 냉기, 터키군인들의 잔인한 고문 들이
만든 고통의 일곱 기둥이었고 지혜의 일곱 기둥이었다.

영어권에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필적하는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지혜의 일곱 기둥」은 인간의 도전 의지를 일종의 신비
체험을 통해 파헤친 로렌스의 자서전이다. 로렌스는 폭염과 살육의
비정한 사막에서 '두렵고 헤아리기 어려운 지고한 것', 종교 이전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신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절대 고독의 경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신성이기도 했다. 이 신성 앞에서 인간은
"육체의 감방에 갇힌 수도사"로 표현된다. 로렌스는 자신의 육체를
생존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학대함으로써 그 안에 갇힌 진정한 인간,
즉 정신의 자유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이 황야에서
발견했던 이 정신의 자유는 로렌스의 표현을 빌리면 "물과 같이
불안정하며 물과 같이 무한하다."

로렌스는 "생명이 태어난 이래 이 물결은 잇따른 파도와 같이 육체의
해안에 도전해왔다. 이 물결이 모두 부딪쳐 부서져도 바다와 같이 서서히
화강암을 깍아내려 먼 미래의 언젠가에는 옛날에 물질 세계였던 지점이
물로 변하고 신이 그 수면에서 움직이시는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그 또한 이러한 파도 하나를 세워 인간의 도전 의지, 그 관념의
입김 앞에 물결치게 했다. 그 파도는 이윽고 절정까지 높아졌다가
다마스커스, 그의 최후의 전장으로 떨어져 흩어졌다.

로렌스의 위대함은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자기 생의 모든 에너지를
불태워버린 것에서도 찾아진다. 다마스커스가 점령되고 전쟁이 끝나자
로렌스는 자신이 인간으로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긴장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휴식을 구했지만 헛된 일이었다. 그의 생명력은
인간 의지의 극한점에서 완전히 소진된 뒤였다.

그리하여 로렌스는 아홉 군데의 총상, 서른 세 번의 골절상, 일곱
차례의 비행기 사고를 겪은 몸으로 아라비아를 떠났다. 모든 정치적인
보상을 거절하고 고국에 돌아온 그는 이름을 바꾸고 공군 사병으로
입대한다. 그는 낮에는 병영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저녁에는 오두막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며 철저히 은둔했다. 그리하여 31살에 아라비아 전역을
제패하고 두 개의 나라를 세웠던 그는 47살이 될 때까지 독신의 사병으로
살다가 병역 만기로 제대하던 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