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TV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은 81년 시작돼 장장 9년동안
방송되었다. 내 개인사적으로도 쉰 한 살에 집필을 시작하여 환갑에
이르는 세월이었고, 그 동안 두 딸이 출가하여 외손자를 보게된 대장정이기도
했다.
매주 250장이 넘는 원고를 쓰는 중노동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일은
첫째 1,866권·887책이나 되는 '조선왕조실록'을 정독하는 일이었다. 국역이
완결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완전히 읽어야 하는 괴로움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둘째는 여러 가문의 종친회와의 마찰이었다. 그들은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대목을 과장해서 써 줄 것을 요구하면서 수천만원의 금품으로 유혹하기도
했고, 선조들의 수치스러운 부분이 방송되면 '린치'도 서슴치 않았다.
나는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을 쓰면서 뚜렷한 목표를 정해두고
있었다. 정사를 주축으로 하는 정통사극의 전형을 제시하는 일과
'조선왕조실록'을 대중화하여 국민들의 역사인식을 가다듬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은 학자의 몫이어야 옳지만, 한 작가에 의해 시도되자 처음
몇년동안은 학계와의 마찰이 잦았다.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선우휘선생과는
같은 지면에 상반된 논증을 펴야하는 일도 있었다. 더 곤혹스러웠던 일은
역사를 왜곡해서라도 권력을 비호하려는 정보 기관과의 마찰이었다.
조선왕조는 강상과 윤기를 치도의 근본으로 삼았고, 외척이 권부의 중심으로
등장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념을 구현하는 덕치의 왕조였다.
그러므로 태종 이방원은 민무구, 민무질 등 네 사람의 처남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사돈이자 국구인 심온에게는 자진을 명하는 등 외척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철저하게 배격하였다. 이같이 조선조 초기의 왕조실록을
바탕으로한 드라마였지만, 정보기관에서는 "무슨 속셈으로 역사드라마를
빙자하여 청와대를 비방하느냐"고 다그쳤다. 그러나 "전하,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서는 선정이랄 수가 없습니다. 원컨데 언로을 열어 백성들의
원성을 귀담아 들어주소서!"라는 식으로 드라마의 외침이 더해가자 기관에서는
방송사의 심의기구를 강화하면서 원고의 사전검열로 삭제를 거듭하더니,
마침내 완성된 드라마를 잘라내는 등의 혹독한 제재를 가해왔다. 그리고
얼마 후 방송은 그들에 의해 강제로 중단되었다.
나는 1987년의 1년간을 실업자 노릇을 하면서 권력보다 더 무서운게
진실이라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원로 시인 김광균선생과 15세난 중학교 3학년
학생 등 많은 시청자들이 내 참담해진 심정에 용기를 복돋우는 편지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역사극을 탓하는 것은 인왕산이 모양이 못생겼다고 바위를 깎아내려
매장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똑똑한체 하는 문화인과 관리는 한
주먹이고, 몇백만의 국민들은 월요일과 화요일 '조선왕조 5백년' 시간이
다가오면 먹던 술잔을 놓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사극에 대한 시비에
신선생께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마시고 앞으로 3년동안 더 고생과 수고를
아끼지 마시길 바랍니다."
김광균 선생의 조언처럼 5공이 물러나고 6공이 들어서면서 '조선왕조
5백년'은 기사회생 하여 장장 9년간에 걸쳤던 대장정의 막을 내릴 수가
있었다.
비도덕적이고 저질의 권력일수록 역사를 왜곡하고 훼손하려 들지만, 그
사실이 비밀에 부쳐진 채 영원히 숨겨진 일은 없다. 바로 그런 비행을
적어서 후대의 경계를 삼게하는 것이 역사이고 보면, 국보(151호)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대중화하는 일에 미력을 보탰던
나의 20세기는 큰 보람이고도 남는다. ( 극작가, 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