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갓 스물한살…영국 음악클럽 문화 속에서 핀 `바이올린의 꽃' ##

25일밤 영국 베드포드시 '콘 익스체인지' 연주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지휘로 열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50주기를 기리는 무대다. 슈트라우스 작곡 '장미의 기사
모음곡'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을 비롯, 영국 작곡가 엘가가
그에게 헌정한 '인 더 사우쓰(in the south) ' ,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
도 함께 연주했다.

바이올린 협연은 앳된 한국 여성. 스물한살 김민진. 자그만 체구에서 나오는
물 흐르듯 거침없는 연주가 인상적이다. 연주회를 마친 아쉬케나지는
"민진은 아주 음악적이며, 재능을 타고 났다" 고 말했다.

김민진은 이번 시즌 '필하모니아' 와 영국서만 세차례 협연했다. 7월
치체스터 페스티벌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을 협연했고, 베드포드 공연
하루전 레딩에 있는 헥사곤 홀에선 멘델스존을 협연했다.

김민진은 국내 음악팬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여느 연주자들과 달리 독특한
행보로 일류무대를 일군다. 서울서 태어나 3살때 대우개발 런던주재원으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갔다. 9살때 퍼셀 음악학교에 최연소 입학,
15살때 왕립음악원 최연소 장학생으로 들어가 지난해 졸업했다.

콩쿠르경력은 12살때 이탈리아서 열린 '프레미어 모차르트 국제콩쿠르'에
영국 대표로 나가 1등한 게 전부. 이때부터 베를린심포니와 랄로의
'스페인교향곡'을 협연하고, 영국 스페인 스위스 등지서 바이올린 솜씨를
뽐냈다. 14살때인 92년, 정경화씨 주선으로 서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서울서 연주했다.

세계적 이름을 얻기 위해 콩쿠르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에 진학해
마스터클래스나 캠프를 돌며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나이로는 보기 드문 '콘서트 아티스트'로 입지를 굳혀가는 비밀은 무얼까.
열쇠는 그의 '출신' 이다. 영국특유 '클럽' 문화가 피워낸 꽃. 이번 시즌
치체스터, 레딩, 베드포드 연주가 그렇듯, 김민진은 영국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 음악팬들과 호흡한다.

왠만한 평론가 수준을 넘는 노 애호가들이 꼼꼼이 연주를 평가한다. 음악회
전에 지휘자나 연주자와 '대화' 시간을 가질 정도다. 베드포드 연주회날,
피아니스트 겸 대지휘자 아쉬케나지는 리허설 '연주전 대화'(프리 콘서트 토크)
실연으로 이어진 일정에 한치 틈없이 충실했다. 40명 남짓한 현지 음악클럽
회원들과 아쉬케나지는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어떻게 활동하나
"젊은이들이 요즘 연주장에 잘 안오는데…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 음향상태는
어떤가" 이런 대화를 40분간 나눴다. 이어진 연주회는 1000여석 완전 매진.
영국에서 연주자와 음악애호가는 이런 방식으로 만난다. 공연문화를 주도하는
'음악클럽' 음악 소사이어티 가 지역마다 부지기수다. 클럽과 협회는
주변에서 발굴한 새 연주자에게 유명 교향악단 협연기회를 주선하며 '새 유망주'를
싹 틔운다. 대규모 흥행을 노리는 미국식 '스타 키우기' 와는 다르다.

김민진이 로열필하모닉 등 영국 '빅 5'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얻는
바탕은 이런 풀뿌리 음악클럽과 음악협회다. 베드포드 연주회에서 그가 사용한
활은 고 메뉴인경이 쓰던 것. 김양의 가능성을 평가한 한 음악클럽이 선물한
것이다. 영국에서 이런 지역무대는 이미 세계적 무대다. 김민진은 영국
지역사회와 속속들이 호흡하고, 한번 초청받은 단체나 오케스트라로부터 다시
초청받으며 대형 연주자로 커가고 있다. 이렇게 올해만 40여회 연주했다.
내년에는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필하모니아와 협연하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도 녹음한다. 런던 위그모어홀 독주, '바쓰 페스티벌' 연주,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밀레니엄 콘서트 출연도 내년 주요 일정. 할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성사될 전망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기획 책임자 마틴 존스는 "오케스트라가 한
연주자를 지원하는 방식은 극히 이례적" 이라며 "필하모니아가 김민진의 재능과
예상되는 미래를 인정한다는 의미" 라고 말했다. 존스는 김민진이 11살때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마틴 장학금' 을 주선한 인물. 필하모니아의 전설적
악장 휴 빈과 함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한 그는 지난해 김양이 퀸
엘리자베스홀에서 브루흐 협주곡을 호연하는 것을 보고 필하모니아 아티스트로
초청했다. 필하모니아는 소프라노 슈바르츠코프 남편이자 EMI 레코드
프로듀서였던 월터 레게가 45년 만든 녹음전문 오케스트라. 푸르트벵글러
슈트라우스 토스카니니 칸텔리 카라얀 클렘페러를 거치며, 녹음 스튜디오에만
갇히지 않는 명문악단으로 이름을 날린다.

김민진의 강점은 어린 나이답잖은 방대한 레퍼터리. 바이올린 거장 루지에로
리치는 "민진은 타고난 바이올리니스트(a born violinist)" 라고 감탄한다.
타계한 솔티경도 김양이 11살때 녹음한 모차르트-쇼숑 음반을 듣고
" 재능을 타고났고 음악성 좋다" 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전 의사가 되어 남을 돕겠다는 꿈을 키웠어요. 음악을
통해서도 어려운 이를 도울 수 있으니 꿈을 이룬 셈입니다.

김민진은 "스스로 음악적 성숙을 느꼈을 때 세계무대로 나가고 싶었는데, 이제
기회가 온 것 같다" 고 말했다. 내년 1월 27일 지휘자 시노폴리가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와 내한, 서울 예술의 전당서 멘델스존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다.